복음: 마태 5,38-42: 나는 말한다. 앙갚음하지 말아라.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구약 율법의 정신을 완성하시며, 인간적 정의의 기준을 넘어서는 새로운 윤리를 가르치신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탈출 21,24)는 동태 복수법을 억제하기 위한 법적 장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복수 자체를 초월하는 사랑의 길을 제시하신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대목을 이렇게 설명한다. “주님께서 ‘다른 뺨을 돌려대라’ 하신 것은 단순히 악을 참으라는 말씀이 아니다. 오히려 악을 선으로 이기고, 가해자마저 변화시키라는 초대이다.”(Homilia in Matthaeum, XVII, 4 요약) 즉, 그리스도인의 인내는 수동적 체념이 아니라, 사랑으로 상대의 마음을 변화시키려는 능동적 행위이다.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이 가르침을 당신 몸으로 실현하셨다. 채찍에 어깨를 내어주셨고, 침 뱉음을 당하시고도 저주하지 않으셨으며, 십자가 위에서도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루카 23,34)라고 기도하셨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먼저 당신 자신이 원수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De sermone Domini in monte, I,19,58 재구성) 그분은 단순히 이상을 선포하신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을 삶과 죽음을 통해 완성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겉옷까지 내주어라.”(40절)라고 하신 말씀은 물질적 소유를 넘어, 우리를 의롭게 하는 더 깊은 차원의 ‘옷’을 가리킨다. 교부들은 이것을 ‘세례로 입는 새 인간’(에페 4,24)으로 해석한다. 오리게네스는 이렇게 주석한다. “육신의 옷을 잃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의로움의 옷, 곧 그리스도를 잃는다면 우리는 가장 큰 것을 잃게 되는 것이다.”(Commentarium in Matthaeum 요약)
교회는 이 구절을 단순한 윤리적 교훈으로 이해하지 않고, 하느님의 자비에 참여하는 초대로 해석한다. 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예수님께서는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셨다. 그것은 단순한 윤리가 아니라, 성령의 은총 안에서만 가능하다. 하느님의 자비에 참여함으로써만, 우리가 인간적인 보복 본능을 넘어 하느님처럼 사랑할 수 있다.”(1825, 1965, 2842-2845항 참조)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더 나은 의로움’(마태 5,20)을 요구한다. 세상은 여전히 힘과 보복의 논리로 움직이지만, 그리스도인은 용서와 자비의 논리로 살아가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불가능해 보이는 자리에서 하느님의 능력으로 드러난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악을 참으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악을 선으로 이기라고 명령하신다. 보복의 악순환을 끊는 길은 오직 사랑과 자비뿐이다. 우리가 성령의 은총 안에서 ‘다른 뺨을 내어주는 용기’를 낼 때, 세상은 조금씩 하느님 나라의 희망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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