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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1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7-01 조회수 : 29

복음: 마태 8,28-34: 가다라인들 지방의 마귀 들린 사람 
 
오늘 복음은 무덤 사이에서 살며 쇠사슬조차 끊어버리는, 인간성을 잃어버린 마귀 들린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예수님을 보자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마태 8,29)하고 외친다. 이제, 예수님 앞에서는 마귀도 그분이 누구신지 고백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오리게네스는 이렇게 말한다. “악마들은 그리스도를 알아보았으나, 그분을 사랑하지 않았고 그분께 순종하지 않았다.”(Commentarium in Matthaeum 요약) 즉, 지식으로 구원받지 못한다. 구원은 주님께 대한 사랑과 순종으로 이루어진다. 
 
마귀 들린 사람들은 단순히 고대적 미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우상과 죄에 사로잡힌 인간의 모습을 드러낸다. 무덤에 산다는 것은, 죄 안에서 이미 영적으로 죽어 있음을 의미한다. 쇠사슬을 끊는다는 것은, 사회적 관계조차 파괴된 인간 고립의 상징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인간의 내적 분열을 이렇게 설명한다. “죄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기 안에서 둘로 나뉘어 있다. 그는 자유로워지려 하지만 죄의 사슬이 그를 붙잡고 있다.”(Confessiones VIII,5 요약) 따라서 예수님의 만남은 단순한 기적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을 다시 온전히 회복시키시는 하느님의 구원 행위다. 
 
마귀들은 예수님의 권능 앞에서 쫓겨나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간다. 유다인에게 돼지는 부정한 동물이었고, 탐욕과 무절제의 상징이었다. 돼지 떼가 호수에 몰려가 몰살당한 것은, 죄의 세력이 궁극적으로 파멸할 운명임을 드러내는 표징이다. 성 에프렘은 이렇게 주석한다. “군중은 돼지 떼를 잃었다고 슬퍼했으나, 하느님은 사람 하나를 되찾으심을 기뻐하셨다.”(Commentarius in Diatessaron 8,28 요약) 이는 우리에게도 큰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영혼의 구원보다도 세속적 손실을 더 크게 여기는 것은 아닌가? 
 
마을 사람들은 치유된 기적을 보고도 예수님께 떠나 주십사고 요청한다.(34절) 이는 구원의 기쁨보다 현세적 손실을 더 중시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교리서도 이 긴장에 관해 설명한다. “예수님의 현존은 사람들 앞에 선택을 요구한다. 사람은 빛을 따르거나, 혹은 빛을 거부할 수 있다.”(548,142-143항 참조) 우리 역시 신앙 안에서 날마다 같은 갈림길에 서 있다. 진리를 따르느냐, 편안함을 따르느냐? 십자가를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포기하느냐? 하느님의 뜻은 언제나 십자가의 도전으로 다가온다. 십자가는 우리를 두렵게 하지만, 동시에 영광의 길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격려한다. “그리스도와 함께라면 어떤 십자가도 무거움이 아니라, 영광의 관문이 된다.”(Homilia XXIX 요약)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께 올바른 응답을 드리는 선택이다. 믿음으로 주님을 받아들이고, 우리 자신을 그분께 봉헌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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