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4주간 화요일]
복음: 마태 9,32-38: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말 못 하는 마귀 들린 사람을 치유하시는 사건과, 그에 이어 제자들에게 일꾼을 보내 달라고 기도하시는 장면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와 사명, 그리고 우리의 응답에 대해 말씀하신다. 군중이 예수님의 치유를 보고 놀라워하는 동안,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비방했다.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33절)라고 말한다.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예수님은 악한 자들의 모독에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오직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활동하신다. 그분의 사랑은 판단이나 반박이 아닌 구원의 행동으로 나타난다.”(Homiliae in Matthaeum, 61 요약) 즉, 하느님의 구원은 우리의 판단이나 조건에 좌우되지 않으며, 우리가 먼저 준비되지 않아도 그분의 자비는 항상 역사하신다.
예수님께서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36절)라고 하신 말씀은 하느님의 마음과 사목적 본보기를 보여 준다. 그들이 죄와 무지, 율법의 무거운 짐 아래 놓여 있었기 때문에 가엾게 여기셨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는 하느님을 이해할 수 없다. 주님께서는 사람의 약함과 죄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으시고, 늘 구원을 향한 길을 제시하신다.”(Enarrationes in Psalmos, 31,3 요약) 이는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우리 주변의 연약한 형제자매, 신앙이 없는 이들,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게 자비로운 시선과 돌봄을 가지고 다가가야 함을 가르친다.
예수님께서는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37절)라고 하신다. 수확은 하느님의 은총과 구원의 열매, 즉 믿는 사람들과 세상에 부어질 성령의 선물을 의미한다. 일꾼은 예수님의 사명을 본받아 구원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은 제자와 우리들이다. 성 그레고리오는 이렇게 해석한다.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이는 누구든지, 스스로를 낮추고 구원의 일에 헌신할 때, 그분의 도구가 된다. 풍성한 수확은 주님의 것이지만, 우리는 그분의 손길로 일하는 일꾼이 되어야 한다.”(Moralia in Job, 21,5 요약)
오늘 우리는 교회의 사명을 기억해야 한다. 단순히 구원받는 것에 머물지 않고, 하느님의 수확을 하는 일꾼으로서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세 가지를 가르친다. 하느님은 먼저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구원과 은총을 베푸신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받은 구원은 자비와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풍성하게 수확하기 위해, 하느님의 일꾼으로서 믿음과 헌신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 보내시는 일꾼으로서, 믿음과 사랑으로 세상의 수확을 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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