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5주간 월요일]
복음: 마태 10,34-11,1: 너희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복음 선포가 가져오는 갈등과 참된 제자의 길을 말씀하신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34절) 예수님의 평화는 단순한 세속적 평화가 아니다. 복음은 하느님과 인간, 빛과 어둠, 믿음과 불신 사이의 근본적 선택을 요청한다. 성 그레고리오는 이를 이렇게 해석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복음은 선을 선으로, 악을 악으로 드러내므로 자연스레 갈등을 불러일으킨다.”(Moralia in Job, 18,4 요약) 즉, 신앙인과 비신앙인이 함께 사는 가정, 사회, 공동체에서 진리 앞의 선택은 필연적으로 갈등을 낳는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37절)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38절) 이는 가족, 자기 자신, 세속적 안전보다 하느님 사랑을 우선하라는 가르침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말한다. “하느님 사랑은 모든 관계의 척도이며, 그분 안에서의 관계만이 참된 사랑이다.”(Homiliae in Matthaeum, 60 요약) 즉, 제자의 삶은 자신의 습관과 욕망, 나아가 생명까지도 하느님 안에서 희생하는 삶이다. 이때 진정한 생명과 영광이 주어진다.
예수님은 또 말씀하신다.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40-41절) 교회의 전통적 해석은 이 구절을 신앙 공동체 안에서 상호 연결된 영적 책임으로 이해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가장 작은 선행이라도 하느님을 위해 행하면, 그것은 하느님께 상으로 돌아간다. 우리가 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곧 하느님께 드리는 것이다.”(Enarrationes in Psalmos, 36 요약)
작은 친절, 심지어 시원한 물 한 잔조차 하느님 앞에서는 큰 의미가 있다.(42절) 여기서 “시원한 물”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베푸는 사랑과 자비를 의미한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상은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행위 속 믿음의 가치에 따른 상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갈등이 일어나더라도, 하느님 안에서 모든 관계를 바라보며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아무리 작은 사랑과 자비도 복음 안에서 신앙의 증거가 되며, 하느님께 상을 받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 습관과 악습을 버리는 삶, 세상의 평가보다 하느님의 뜻을 우선하는 삶이 참된 제자의 길이다.
세상의 갈등 속에서도 담대하게 하느님을 따르고, 가장 작은 행위 속에서도 믿음을 실천하며, 하느님의 뜻을 최우선으로 삼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 이것이 바로 예언자와 의인을 받아들이는 사람으로서, 하느님께 합당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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