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5주간 월요일>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마태10,34)
'칼의 의미!'
오늘 복음(마태10,34-11,1)은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와 '버림과 따름'과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들이 받을 상'에 대한 말씀입니다.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오셨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역설(paradox)로 다가왔습니다. 죽어야 부활한다는 역설, 참평화는 반드시 정화(회개)를 거쳐야 한다는 역설, 그래서 신앙은 신비라는 역설로 다가왔습니다. 미사를 드릴 때마다 우리는 이 역설(신앙의 신비)을 고백합니다.
'칼의 의미'가 '정화의 의미인 회개의 의미'로, 부모와 자녀보다 더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는 '힘든 사랑의 의미'로, 그리고 이것이 또한 우리가 날마다 짊어져야 할 '십자가의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오늘 독서(이사1,10-17)에서 이사야 예언자가 타락한 소돔의 지도자들과 고모라의 백성들에게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분향 연기도 나에게는 역겹다. 너희가 팔을 벌려 기도할지라도, 나는 너희 앞에서 내 눈을 가려 버리리라. 너희가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한다 하더라도, 나는 들어 주지 않으리라. 너희의 손은 피로 가득하다. 너희 자신을 깨끗이 하여라. 내 눈 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악행을 멈추고, 선행을 배워라."(이사1,13.15-17ㄱ)
고통과 시련 앞에서 기뻐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차이는 '누가 빨리 그 고통을 예수님의 고통으로 연결짓는가?'
그래서 '누가 빨리 그 고통에서 일어나는가?'의 차이만 있을 뿐.
말처럼 쉽지는 않네요.
'칼의 의미를 지닌 십자가'는 늘 내 앞에 놓여 있습니다.
이 십자가를 통해 나의 부족한 모습도 보게 되고,
이 십자가를 통해 주님의 십자가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고통과 시련이 나쁜 것만은 아니네요.
'오늘도 화이팅 합시다!'
(~시편8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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