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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19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7-19 조회수 : 26

[연중 제16주일] 
 
복음: 마태 13,24-43: 하느님 나라의 비유: 밀과 가라지 
 
1. 선과 악의 신비로운 공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밀과 가라지”의 비유는 교회의 역사 안에서 끊임없이 묵상 된 주제다. 주님께서 좋은 씨앗을 뿌리셨지만, 원수는 밤중에 가라지를 뿌린다. 이로써 하느님 나라가 현존하는 세상에서는 언제나 선과 악이 함께 자라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지금은 가라지가 밭에 남겨져 있다. 추수 때가 되면, 가라지가 드러나 불타버릴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밀로 바뀔 수도 있다. 교회 안에서도 가라지였던 자가 회개하여 밀로 변화되는 경우가 많다.”(Enarrationes in Psalmos, 25,2 요약) 즉, 우리가 쉽게 판단하고 잘라내고 싶어 하는 그 ‘가라지’조차도 하느님 앞에서는 언제든 회개와 변화를 통해 새로운 생명을 맺을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2. 하느님의 오래 참으심과 자비
이 비유의 핵심은 단순히 선과 악의 공존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와 오래 참으심이다. 지혜서는 이렇게 고백한다. “주님께서는 힘의 주인이시므로 너그럽게 심판하시고 저희를 아주 관대하게 통솔하십니다.”(지혜 12,18-19)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도 이 구절을 해설하며, 하느님의 참으심은 단순한 지연이 아니라, 구원을 위한 적극적 기다림이라고 말한다. “하느님께서 즉시 벌하지 않으시는 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자비의 표징이다. 그분은 죄인이 회개하여 구원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In Matthaeum homiliae, 46,1 요약) 
 
3. 교회 안에서의 적용: 가시와 밀의 공동체
교회는 하느님 나라의 씨앗이자 표징이다.(교회 5항 참조) 그러나 동시에 교회 안에서도 선과 악이 공존한다는 것은 초대 교회부터 자각된 사실이었다. 성 치프리아노는 이렇게 강조한다. “교회는 지금 세상에 순교자와 배교자, 의인과 죄인, 밀과 가라지가 함께 섞여 있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는 주님의 손길에 의해 구별될 것이다.”(Epistula 69,2 요약) 이 가르침은 우리로 하여금 교회 안의 ‘불완전함’을 비관적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자비와 희망의 관점으로 바라보도록 초대한다. 
 
4. 종말론적 희망: 해처럼 빛나는 의인
예수님의 설명은 마지막에 종말론적 약속으로 끝난다.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43절) 이는 다니엘서의 예언을 떠올리게 한다. “현명한 이들은 창공의 광채처럼, 많은 사람을 정의로 이끈 이들은 별처럼 영원무궁히 빛나리라.”(다니엘 12,3) 성 아우구스티노는 여기서 교회의 궁극적 소명을 본다. “지금은 가라지와 함께 자라는 고통의 시기이지만, 끝 날에는 밀만이 남아 하느님의 나라에서 빛날 것이다. 이는 교회의 영광이며, 하느님의 은총의 완성이다.”(De civitate Dei, 20,9 의역) 
 
5. 영성적 적용
우리 눈에는 가라지처럼 보이는 이도, 하느님 눈에는 밀로 변화될 가능성을 지닌 존재이다. 하느님께서 나를 기다려주셨듯이, 나도 이웃을 기다려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 선과 악은 내 마음 안에도 공존한다. 성령의 은총 안에서만 악을 선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로마 8,26 참조) 지금 불완전함 속에서도 우리는 마지막 날 하느님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소명을 받았다. 
 
6. 결론
밀과 가라지의 비유는 인간의 약함과 죄의 현실을 드러내는 동시에, 하느님의 자비와 구원 의지를 선포하는 말씀이다. 지금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시간이며, 이는 구원의 기회이자 하느님의 기다림의 시간이다. 따라서 신앙인은 세상을 조급히 심판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자비와 회개의 길 위에서 인내하며, 마지막 날 해처럼 빛날 희망을 간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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