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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12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8-12 조회수 : 43

[연중 제19주간 수요일] 
 
복음: 마태 18,15-20: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공동체 안에서 갈등과 죄의 문제를 다루신다. 인간이 모인 곳에는 상처와 오해가 생긴다. 예수님은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사랑과 자비의 충고, 그리고 공동체적 치유를 제시하신다.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15절) 목표는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형제를 되찾는 것이다. 
 
예수님은 먼저 “단둘이” 만나라고 하신다. 이는 은밀히 그의 상처를 싸매 주려는 배려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사랑의 태도다. “충고”는 꾸짖음이 아니라, 구원으로 이끄는 손길이다. 만일 개인적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면, 다른 이들과 함께 대화하라고 하신다. 공동체의 지혜와 사랑이 함께할 때 형제가 더 잘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끝내 듣지 않는다면, 교회의 권위에 그를 맡기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교회에 “매고 푸는 권한”(18절)을 주셨다. 이는 교회의 권위가 인간적 통제의 수단이 아니라, 구원의 열쇠이자 자비의 도구임을 의미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그리스도께서 형제를 구원하는 길을 보여 주신다. 그 목적은 상대방을 벌주는 것이 아니라, 그를 다시 얻는 것이다.”(Hom. in Matt. 60 요약)라고 하였고, 성 아우구스티노는 “사랑 없이 훈계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사랑으로 훈계하지 않는다면, 그 침묵은 죄에 동조하는 것이다.”(Sermones 요약)라고 하였다. 성 베네딕토 규칙에는 공동체 안에서 죄를 짓는 형제에 대한 교정은 언제나 점진적이고 인내심 있게, 형제를 다시 얻기 위한 사랑의 과정으로 진행되어야 한다.(RB 23 참조)고 가르친다. 교리서는 “형제적 훈계는 사랑의 본질적인 표현이며, 그것은 영혼의 구원을 위한 자선 행위이다.”(1829, 2447항 참조)라고 한다. 
 
우리는 누군가가 잘못했을 때, 은밀히, 인내로, 사랑으로 다가가야 한다. 신앙은 개인만의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 삶이다. 개인적 대화가 실패했을 때 공동체의 도움을 청하는 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구원의 책임을 진다는 의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주 강조했다. “교회는 완전한 이들의 모임이 아니라, 죄인들을 치유하는 병원이다.” 형제의 잘못을 고발하는 데 머물지 않고, 함께 치유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우리 시대는 분열과 갈등이 많은 사회이다. 주님의 약속대로, 두세 사람이 그분 이름으로 마음을 모아 기도할 때, 주님께서 함께하시며 화해와 평화의 길을 열어주신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형제를 잃지 않는 법을 가르치신다. 충고는 정죄가 아니라, 사랑으로 형제를 다시 얻는 길이다. 공동체는 심판의 자리가 아니라, 치유와 화해의 장이다. 기도는 마음을 모아 사랑으로 하나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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