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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22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8-22 조회수 : 17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복음: 마태 23,1-12: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꾸짖으시다. 
 
예수님께서는 군중과 제자들에게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모순된 삶을 드러내신다. 그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가르치지만, 스스로는 그 말씀을 살지 않는다. 그들의 말은 무겁지만, 그들의 삶은 가볍다. 그들은 율법을 외적 장식물(성구갑, 옷자락 술)로 만들고, 사람들의 존경과 인사를 탐하지만, 하느님 앞에서 겸손과 사랑의 실천은 잃어버렸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스승이 말하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귀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스승의 행동이 그 말씀과 다르다면, 우리는 그들의 행동을 따르지 말고 그들이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만 따라야 한다.”(Sermones 요약) 이는 오늘날 교회 안에서 말씀을 선포하는 이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구절을 해설하며 겉꾸밈의 죄를 엄중히 경고한다. “바리사이들은 하느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기 영광을 추구했다. 그들의 기도, 단식, 옷차림은 모두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신앙의 참된 표지는 드러남이 아니라, 은밀함 속에서 드러나는 하느님 앞의 진실성이다.”(Hom. in Matthaeum 참조) 하느님 앞에서 드러나지 않는 행위는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가 기도하고 봉사할 때, 누군가의 눈길이 아니라 하느님의 시선을 의식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예수님의 결론은 단호하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12절) 성 그레고리오는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한다. “겸손은 미덕의 어머니이다. 겸손 없이는 그 어떤 선행도 하늘 나라에 오르지 못한다. 겸손은 봉사로 드러나며, 봉사는 사랑에서 비롯된다.”(Homiliae in Evangelia, 참조) 교리서에서도 ‘끝자리’는 단순한 자리 배치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택하신 십자가의 자리, 곧 봉사와 헌신의 상징이었다.(2540-2547, 786항 참조) 
 
오늘 복음은 신앙을 외적 치레로 만들려는 유혹을 경계한다. 하느님 앞에서 중요한 것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자리로 내려가는 것이다. 교회의 권위와 가르침도 그 뿌리가 봉사 안에서 확인되어야 한다.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다.”(10절)라는 말씀은, 신앙인의 권위가 자기 자신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일치 안에서 흘러나온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제 우리의 참된 장식은 외적인 표지가 아니라, 사랑으로 드러나는 내적인 은총이어야 한다. 
 
오늘 복음은 겸손과 사랑으로 섬기는 삶이 참된 제자의 표지임을 강조한다. 외적 영광을 좇는 바리사이적 태도를 벗고, 예수님처럼 낮아져 끝자리에 앉는 용기가 있을 때, 우리는 하늘 나라에서 참으로 높은 자리에 앉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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