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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6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9-06 조회수 : 35

1. 형제를 얻는 복음적 길: 공동체 안의 책임 

 

오늘 복음은 교회의 내적 생활의 본질적 모습을 보여 준다. 예수님은 형제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를 다시 얻기 위해 노력하라.”(15절) 사랑의 길을 제시하신다. 에제키엘서(33,7-9)는 예언자의 사명을 통해 공동체적 책임을 밝힌다.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예언자는 백성을 심판하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 그들이 생명으로 돌아오도록 이끄는 파수꾼이다. “내가 악인에게 ‘너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하여도 네가 악인에게 그 악한 길을 버리도록 경고하는 말을 하지 않으면, 그 악익은 자기 죄 때문에 죽겠지만, 그가 죽은 책임을 너에게 묻겠다.”(에제 33,8) 교회 안의 형제적 권고는 공동체의 구원을 위한 사랑의 봉사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가르친다. “형제의 죄를 보고도 침묵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냉담이다. 사랑은 진리를 말할 용기를 낸다.”(Homiliae in Matthaeum, 60,1 의역) 교리서는 “형제의 죄를 바로잡는 것은 자비의 영적 행위”(1829)라고 말한다. 즉, 타인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은 비난이 아니라,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사랑의 실천이다. 

 

2. 화해의 3단계: 사랑의 질서 안에서 

 

예수님은 형제의 잘못을 대하는 세 단계의 방법을 제시하신다.

1) “단둘이 만나 타일러라.”(15절): 이 첫 단계는 인격과 존엄을 존중하는 만남이다. 인간은 관계 안에서 성장하기 때문에, 회개의 첫걸음은 비밀스럽고 진심 어린 대화로 시작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한다. “그의 잘못을 남에게 알리기 전에, 먼저 그와 사랑으로 만나라. 사랑이 없는 진리는 폭력이 되고, 진리가 없는 사랑은 위선이 된다.”(Sermo 82,2 의역)

2) “두세 증인을 데리고 가라.”(16절): 이는 단순히 법적 절차가 아니라, 공동체의 책임 참여를 의미한다. 공동체는 죄를 단죄하는 집단이 아니라, 회개로 인도하는 치유의 공간이어야 한다.

3) “교회에 알려라.”(17절): 마지막 단계는 교회의 공적 개입이다. 그러나 그 목적은 ‘제명’이 아니라, 형제의 회복이다. 교회의 징계는 배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되돌아올 문을 열어두는 징계이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자비로우신 하느님”(Dives in Misericordia, 1980)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진정한 정의는 사랑 안에서만 완성된다. 교회는 죄인을 벌하는 곳이 아니라, 자비로 그를 치유하는 어머니이다.”(DM, 12항 의역) 

 

3.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다.”: 교회의 권위와 사명 

 

예수님께서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다.”(18절)라고 하신 말씀은, 이미 베드로에게 주신 권한(마태 16,19)을 공동체 전체에 확장한 것이다. 이는 교회의 권위가 단일 인물에게서만이 아니라, 사랑과 일치 안에 있는 공동체 전체에게 주어졌음을 뜻한다. 교회 헌장은 교회를 이렇게 정의한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모으시어, 성령 안에서 일치하게 하시며, 진리와 사랑 안에서 그분의 생명에 참여하게 하신다.”(9항 의역) 교회는 그리스도의 현존이 머무는 신비의 공동체이다. 따라서 교회의 권위는 지배나 통제가 아니라, 화해시키는 사랑의 봉사다. 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와 사도들에게 맡기신 ‘화해의 임무’(2코린 5,18)를 수행한다.”(981항 의역) 이 직무의 목적은 언제나 화해이며, 공동체 안에서 죄가 은총으로 바뀌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4.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 교회의 신비 

 

예수님께서 약속하신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20절) 교회는 외적 제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일치하는 신앙 공동체, 곧 하느님 현존의 자리다. 성 이레네오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곳에 교회가 있고, 교회가 있는 곳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다.”(Adversus Haereses, III,24,1 의역) 따라서 교회의 본질은 건물이나 제도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와의 일치와 형제애의 사랑 안에 있다. 기도와 말씀, 화해와 용서가 있는 곳에 주님께서 친히 머무시어 그 공동체를 당신 몸으로 변화시키신다. 

 

5. 사랑, 율법의 완성: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 

 

바오로 사도는 제2독서(로마 13,8-10)에서 이렇게 가르친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로마 13,10) 즉, 교회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유일한 법은 사랑의 법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한다.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원하는 대로 하여라. 사랑이 모든 율법의 완성이다.”(In Epistolam Ioannis ad Parthos Tractatus, 7,8 의역) 사랑이 있는 곳에서는 비난이 아닌 이해가, 배척이 아닌 화해가 이루어진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세워진 공동체이기에, 그 사랑 안에서만 진정한 권위와 일치가 유지된다. 

 

6. 화해의 영성: 우리 가정과 공동체 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공동체의 이상은 결코 추상적이 아니다. 우리의 가정, 본당, 신앙 공동체 안에서 이 용서와 화해의 영성이 살아나야 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 화해하지 못하는데, 하느님과 화해할 수는 없다. 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하느님과 화해할 수 있는 마음은, 우리가 먼저 형제와 화해하려는 마음 안에서만 생겨난다.”(2840항 요약) 따라서 진정한 신앙은 언제나 관계 안에서 증명된다. 우리가 서로를 용서할 때,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시고, 그리스도의 교회는 살아 있는 공동체로 드러난다. 

 

7. 맺음말: 사랑의 일치 안에 머무는 교회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공동체의 본질을 묻는다. 우리는 서로를 비난하는가, 아니면 얻기 위해 노력하는가? 우리는 상처를 남기는가, 아니면 화해를 일으키는가? 주님은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20절)라고 하신다. 이 약속은 교회의 심장이다. 우리의 가정, 본당, 사회 안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 용서하고, 이해하며, 사랑할 때, 그분의 현존이 우리 안에 살아난다. 그리스도의 현존은 사랑의 공동체 안에서만 드러난다. 그 사랑의 법을 실천할 때,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신다. “너희 가운데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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