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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11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9-11 조회수 : 33

복음: 루카 6,39-42: “이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42절)라고 하시며, 남을 판단하기보다 먼저 자신을 성찰하라고 하신다. 신앙인의 삶은 타인을 재단하고 단죄하는 삶이 아니라, 자비와 겸손으로 자신을 먼저 고치는 삶이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39절)라고 말씀하시며, 영적 분별과 자기 성찰의 필요성을 강조하신다. 다른 사람의 눈 속 티는 잘 보면서, 자기 눈 속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위선이다.(41절) 따라서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정화한 다음에야 비로소 다른 이를 도울 수 있다. 이 말씀은 단순히 도덕적 교훈이 아니라, 제자직의 본질을 드러낸다. 제자는 스승이신 그리스도를 닮아, 자비와 겸손 안에서 이웃을 인도해야 하기 때문이다.(40절 참조) 

 

교부들은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신앙인의 자세를 가르쳤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타인의 허물을 단죄하는 일에 앞서, 자신의 허물에 눈을 떠야 한다. 자기 죄를 깨닫는 이는 더 이상 남을 판단하지 않는다.”라고 가르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네가 다른 이를 심판할 때, 너는 그 사람을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너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왜냐하면,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죄인들이기 때문이다.”(Sermon 19,2)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심판보다 먼저 용서를 선택하고, 단죄보다 자비를 우선시한다. 이렇듯 교회의 전통은, 자신에게 엄격하고 이웃에게는 자비로운 태도가 그리스도인의 길임을 강조하고 있다. 

 

오늘 말씀은 우리 신앙생활 안에서 두 가지를 성찰하도록 초대한다. 자기 성찰, 나는 혹시 다른 이의 작은 티끌을 꼬집으면서, 내 안의 들보를 보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가정에서, 공동체에서, 교회 안에서, 쉽게 남을 비난하면서 내 허물에는 눈 감고 있지 않은가? 자비와 관대함, 우리는 다른 사람을 단죄하는 심판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자비를 전하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신 예수님(요한 8,1-11),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마태 18,22)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나에게 잘못한 이웃을 용서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우리 안의 들보를 빼내라고 하신다. 이는 우리가 모두 먼저 회개와 성찰로 주님 앞에 바로 서라는 초대이다. 남을 판단하기보다 자신을 고치고, 단죄하기보다 자비를 선택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세상에 참된 빛과 평화를 전할 수 있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37절)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하느님의 자비를 닮아 살아가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청하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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