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석 위의 집
오늘 우리는, 마태오 복음저자가 ‘산상 설교’(마태 5-7장)에서 그렇게 했듯이, 루카 복음저자가 그리스도인 삶의 헌장(憲章)으로 자리한 예수님의 고귀한 가르침들을 모아 놓은, 소위 ‘평지 설교’(루카 6,17-49)라는 단원의 마지막 말씀을 듣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당신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나무와 열매에 비유하여 말씀하십니다: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곳을 내놓는다.”라는 것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율법에 의한 것만을 선한 것으로 말하나, 예수님은 율법이 아니라 선한 마음을 판단 기준으로 일러주십니다. 생각과 욕구와 감정의 곳간인 마음은 선하고 나쁜 생각과 말과 행위의 원천이며, 윤리적 결단을 내리는 보고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선과 악의 기준을, 율법을 넘어 완성의 길로 이끄는 당신의 삶과 가르침에 있음을 역설하십니다. 당신의 말씀을 받아들여 실행하는 자는 “마음의 선한 곳에서 선한 것을 내놓는 사람”으로 자리할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실행하는 이”는 “땅을 깊이 파서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에서 우리는 ‘들음’과 ‘실천에 옮김’이라는 주제를 자주 접합니다. 들음, 곧 해야 할 일을 아는 것과, 그렇게 안 것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 바로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을 분명하게 알지 못할 때, 우리는 자신감을 잃고 망설이거나 헤매는 삶, 보람과 거리가 먼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이 어떠하고, 살아가는 방법이 어떠하든, 어찌 보면 우리의 삶은 크고 작은 결심의 연속이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이 결심이 깊은 기도를 통해 찾아낸, 다시 말해서 주님의 뜻에 맞는 숙고의 결실이 아니라면, 결국 우리는 “기초 없이 맨땅에 집을 짓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한편, 이 결심이 숙고의 결과라 하더라도, 결심한 바를 실천에 옮기지 못한다면, 이 또한 모래 위에서 만족하는 삶에 불과할 것입니다. 사실은 바로 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 삶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 숨어 있습니다. 결심의 내용은 꽤 괜찮아 보이는데, 분명 남들이 인정하고 부러워하는 결심인 것 같은데, 더 나가지 못하고 결심 그 자체로 머무는 삶에 만족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삶은 살아온 삶까지 부정하거나 훼손하는 삶이 될 때가 적지 않습니다: “강물이 들이닥치자 그 집은 곧 무너져 버렸다. 그 집은 완전히 허물어져 버렸다.”
오늘 하루, 기도하며 주님의 뜻을 찾아 결심하고 이 결심을 실천에 옮기는 가운데, 비록 더디기는 하지만 분명히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의 모습을 지향하는, 보람 있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