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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16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9-16 조회수 : 43

복음: 루카 7,31-35: “우리가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았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길 수 있을지 말씀하신다. 아이들이 장터에서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하여도 울지 않는 고집스러운 아이들 같다고 하신다. 요한 세례자가 금욕의 삶을 살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33절)라고 하고, 사람의 아들인 예수님이 잔치 자리에서 먹고 마시자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34절)라고 비난한다. 

 

문제는 하느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 자기 생각으로만 판단하는 태도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교만한 자는 하느님의 지혜가 자기 눈앞에 있어도 보지 못한다. 그는 자기 기준으로만 재단하며, 결국 하느님의 지혜를 거부한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의 문제는, 그들의 눈이 이미 자기 확신과 고집으로 가려졌다는 데 있었다. 

 

예수님은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35절)라고 말씀하신다. 집회서는 “지혜는 자신의 아들들을 키워주고 자신을 찾는 이들을 보살펴 준다.”(4,11)라고 한다. 지혜의 자녀란 곧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고 받아들이는 이들이다. 성 이레네오는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이야말로 지혜의 열매를 맺는다.”라고 했다. 우리도 신앙인으로서 단순히 이름만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하느님의 지혜 안에서 살아가는 참된 자녀가 되어야 한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일 수도 거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참된 자유는 하느님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진리의 광채”(Veritatis Splendor)에서 “진리는 인간의 자유를 인도하며, 자유는 진리 안에서만 완성된다.”라고 요약했다. 우리가 고집스럽게 자기 뜻을 고수한다면, 결국 하느님의 은총을 거부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래서 회개란 단순히 죄를 뉘우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하느님께로 향하는 근본적인 전환이어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요한 세례자의 고행을 통해서도, 예수님의 식탁 친교를 통해서도 하느님은 구원을 베푸신다. 문제는 우리가 그분의 현존을 알아볼 준비가 되어있는지, 그리고 즉시 응답할 순명의 자세가 되어 있는지의 여부이다. 

 

우리는 신앙 안에서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해도 울지 않는’ 완고한 아이들처럼 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지혜의 자녀로서,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고, 겸손히 순명하며, 자유롭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는 참된 기쁨과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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