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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18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9-18 조회수 : 61

그릇된 신념처럼 위험한 것이 다시 또 없습니다! 

 

 

이 한 세상 살아가다보면 고통이 우리 인생을 압도하고 짓누르는 괴로운 순간이 있습니다.

그 고통의 한 가운데를 지날 때는 정말이지 사는 게 너무 혹독해 다 때려 치우고 싶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심연의 바닥을 이리저리 기어 다니면서 울부짖고 발버둥치다보면 끝날 것 같지 않던 고통의 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칠흑처럼 어두웠던 내 마음에 작은 빛이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끔찍했던 고통을 넘어서며 우리는 또 한 가지 소중한 가르침을 배우게 됩니다.

‘이토록 혹독한 고통, 영원한 것은 아니구나 이 또한 지나가는 것이로구나. 이것도 인생의 한 부분이로구나.’ 하는 깨우침 말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극심한 고통 중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부단히 빛을 갈망해야 합니다.

그 빛을 가져다주시는 분은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짙은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우리를 향해 다가오십니다.

힘들어도 그 빛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 우리가 목숨 다하는 순간까지 되풀이 해야 할 과제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여인들이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여제자들. 극한 고통에 시달리다가 예수님이라는 강렬한 빛에 치유의 은총을 입은 여인들입니다.

한분 한분이 정말이지 특별한 인생의 전반부를 살았습니다. 

 

“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낫게 된 몇몇 여자도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였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강렬한 빛 가까이 다가가면 자신의 허물을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아주 가까이 예수님께 다가감으로 인해 자신들의 비참하고 가련한 처지를 정확히 파악하게 되고, 그분의 자비와 은총에 힘입어 새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빛이신 하느님께로 부단히 나아가는 것, 그것이 회개의 생활이자 영성생활, 기도생활입니다.

빛이신 하느님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 바로 죄악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원 교회 공동체의 모습이 참으로 주목할만 합니다.

그 공동체 안에는 열두 사도뿐 아니라 72제자들, 그리고 여제자들도 함께 했습니다. 

 

당대 잘 나가던 사람들, 가방끈 긴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 눈으로 볼 때, 산산조각 난 사람들, 죄인들, 망가진 사람들, 이방인과 경계인들도 함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도 크게 환영했고, 당신 제자로 받아들이셨으며, 그들과 모든 것을 나누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화려하고 찬란한 성전의 외형에 자아도취된 나머지, 구성원들의 내면의 성찰과 성장은 뒷전이지는 않은가요?

우리 교구, 우리 본당, 우리 수도회가 최고라는 그릇된 확신에 사로잡혀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연대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아닌지요? 

 

그릇된 신념처럼 위험한 것이 다시 또 없습니다.

진지한 자기 성찰과 지속적인 반성이 없는 그릇된 확신으로 가득 찬 공동체의 끝은 불을 보듯히 뻔합니다.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지금 보고 있는 이 화려한 성전, 돌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산산조각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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