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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27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9-27 조회수 : 40

복음: 마태 21,28-32: “맏아들은 뉘우치고 일하러 갔다.” 

 

1. 개인의 회개와 책임

오늘의 주제는 회개(μετάνοια)이다. 제1독서(에제 18,25-28)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운명을 집단적 죄책이 아니라, 각 개인의 선택과 회개에 따라 새롭게 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악인이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악을 생각하고 그 죄악에서 돌아서면, 그는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에제 18,28)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설명한다. “회개란 단순히 죄를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느님께 향하는 것이다.”(Sermo 19,2 의역) 오늘의 독서는 우리가 흔히 범하는 오류, 죄의 책임을 구조나 타인에게 전가하는 태도를 바로잡는다. 하느님께서는 ‘사회적 구원’ 이전에 ‘개인의 회개’를 원하신다. 교리서는 말한다. “회개는 인간의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전환이며, 그로써 인간은 하느님께 돌아서고, 죄를 끊고, 새 생명을 향해 나아간다.”(1431항 의역) 

 

2. 두 아들의 비유: 말보다 중요한 것은 “행동”

예수님의 비유는 단순한 가족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 담겨 있다. “예!”하고 대답하고 가지 않은 둘째 아들은, 말로는 순종하지만, 행동으로는 거부한 사람을 상징한다. “아니오!”하고 대답했지만 회개하고 일하러 간 맏아들은, 비록 늦었지만, 진심으로 하느님의 뜻을 따른 사람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비유를 이렇게 풀이한다. “말로 순종하는 것은 쉽지만, 행함으로 순종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혀가 아니라 마음의 순종이다.”(Homilia in Matthaeum, 68,2 의역) 이 비유는 단순히 두 아들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행동 없는 신앙’과 ‘회개로 이어지는 신앙’의 대비를 보여 준다. 형식적 신앙, 즉 “예!”라고 말하고 순종하지 않는 태도는 자기기만에 불과하다. 

 

3. 바리사이들과 죄인들: 진정한 회개의 길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하느님께 “예!”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분의 아들인 예수님을 거부했다. 그들은 하느님의 뜻을 자신들의 율법적 잣대 안에 가두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그들의 폐쇄성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그들은 진리를 알고자 하지 않았다. 자신이 이미 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Tractatus in Ioannem, 41,1 의역) 

 

반면, 세리와 창녀들은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고, 요한의 세례를 통해 회개의 길에 들어섰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들의 겸손을 찬양하시며 말씀하신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31절) 이는 ‘죄인’이 구원받는다는 역설이 아니라, 회개한 죄인이 의인보다 먼저 하느님께 나아간다는 복음의 진리를 드러낸다. 성 그레고리오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넘어지지 않는 이를 사랑하시지만, 넘어진 뒤에 일어서는 이를 더 사랑하신다.”(Homiliae in Evangelia, 34,8 현대적 요약) 

 

4. 그리스도의 순종: 완전한 “예”의 모범

바오로 사도는 오늘 제2독서(필리 2,1-11)에서 그리스도의 순종을 우리 신앙의 본보기로 제시한다. “그분께서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 2,8)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뜻 앞에서 단 한 번도 “아니오.”라 고 하지 않으셨다. 그분 안에서 두 아들의 비유는 완성된다. “그리스도의 ‘예’ 안에서 하느님의 모든 약속이 실현되었다.”(2코린 1,20) 

 

성 이레네오는 이를 다음과 같이 신학적으로 요약한다. “아담의 불순종이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했지만, 그리스도의 순종이 우리를 생명으로 이끌었다.”(Adversus Haereses, III,22,4 현대적 요약) 그분의 순종은 단순한 복종이 아니라, 사랑으로 드러난 자유로운 헌신이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회개는 ‘두려움에 의한 복종’이 아니라, ‘사랑에 의한 일치’로 나아가야 한다. 

 

5. 공동체 안의 겸손과 일치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 신자들에게 말한다.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필리 2,3) 교회의 일치는 ‘율법적 정통성’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는 겸손과 자기비움 위에서 세워진다. 사목 헌장은 이를 이렇게 표현한다. “그리스도인의 양심은 모든 인간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초대받는다.”(16항) 그러므로 진정한 회개는 단순히 도덕적 반성이 아니라, 자기중심성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공동체적 변화이다. 

 

6. 회개의 결실: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삶

예수님의 비유는 우리 각자에게 묻는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28절) 이 물음은 지식의 질문이 아니라, 결단의 질문이다. 성 암브로시오는 말한다. “회개는 단 한 번의 눈물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다.”(De Poenitentia, II,10 의역) 맏아들은 단순히 ‘뉘우친 사람’이 아니라, ‘행동으로 돌아선 사람’이었다. 우리의 회개도 행동으로 드러나는 사랑의 결단이 되어야 한다. 그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닌 참된 아들로서, 아버지의 뜻 안에서 살게 될 것이다. 

 

7. 맺음말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회개는 감정적 후회가 아니라, 존재의 방향 전환이다. 그분은 우리 각자에게 “오늘도 포도밭에 가서 일하라”라고 부르신다. 그 부르심에 “예, 주님”이라 말한 뒤 멈추지 말고,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가는” 믿음의 아들이 되어야 한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말로 강론을 맺는다. “하느님께 돌아서지 않는 ‘예’는 거짓이고, 회개로 이어지는 ‘아니오’는 참된 순종이다.”(Sermo 67,4 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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