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주보

수원주보

Home

게시판 > 보기

오늘의 묵상

9월 28일 _ 김건태 루카 신부

작성자 : 김건태 작성일 : 2026-09-27 조회수 : 140

가장 큰 사람

 


사도들은 스승 예수님이 겪어야 하는 고통, 그 가운데서도 세상과 인류의 구원을 위한 그분 사명의 정점을 이루는 십자가상 죽음, 중요한 사건인 만큼 앞서서 이미 예고하신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했습니다. 이해를 뛰어넘어 깊은 인상을 받거나 감격해야만 했음에도 말입니다. 죽음에 관한 스승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묵상하여, 이를 바탕으로 곧 불어닥칠 고통스러운 죽음의 시간들을 대비해야 했음에도 말입니다,

 

사도들은 선택받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예수님의 사람으로서 장차 누리게 될 특권만을 갈망하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세우실 지상 왕국의 영광스러운 시간만을 기다려 왔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지상 왕국 건설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신 분이 아님을 아직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이 제자들의 논쟁, 곧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일어난” 논쟁을 전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더욱이, 예수님이 보시기에 당신의 뒤를 이어 지상교회를 책임지고 관리할 제자들이 이러한 문제로 논쟁을 벌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공동체를 이끌어갈 때 우선시해야 하는 기본 정신을 아직도 숙지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상징적인 행위로 이 문제에 답을 주십니다.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신 다음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고 이르십니다. 이 상징적인 답변으로 예수님의 의도는 분명히 드러납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 속에서 가장 높은 자리는 가장 뛰어난 사람, 가장 박학한 사람, 가장 유능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자리가 아니라, 가장 연약한 사람, 가진 것이 없는 사람, 늘 따돌림받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자리임을 밝히십니다. 왜냐하면 “너희 가운데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다스림’을 월등한 힘으로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는 행위로 해석하고 확신해왔던 사람들에게 역설적이며 충격적인 가르침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다스림을 지배가 아니라 봉사로 가르치고 계시니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가르침은 어떠한 이의제기도 허락하지 않는 완벽한 권위를 기초로 합니다. 예수님은 가르치신 그대로 몸소 실천에 옮겨 사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가운데 가장 비천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으며, 가난과 반대와 고통의 삶, 끝내 십자가상 희생제물로 당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한편, 오늘 이 이야기와 함께, 사도들 입장에서 본다면 정말 수치스러웠던 사건들, 그래서 남몰래 지워버리거나 잊어버리고 싶었던 사건들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그 사도들에 의해 전파되어, 훗날 복음 저자들에 의해 기록으로 남게 된 사건들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따라서 사도들은 예수님의 뒤를 이어 지상교회를 맡고 관리해 나가면서, “우리 가운데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논쟁을 벌였던 일을 기억함과 아울러,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하신 주님의 말씀을 늘 가슴에 새기며, ‘가장 큰 사람’이 아니라 ‘가장 작은 사람’이 되기 위해 온 힘을 다했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과 사도들, 그리고 자랑스러운 신앙의 선조들이 ‘가장 작은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전해준 신앙을 살아가면서, 특히 교회 공동체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봉사해 나가면서, ‘가장 작은 사람’의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임을 마음에 새기는, 의미 있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