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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3일 _ 김건태 루카 신부

작성자 : 김건태 작성일 : 2026-10-02 조회수 : 13

[10월 첫 토요일: 성모 신심 미사]

 

마음속에 간직하시는 성모님

 


우리 가톨릭교회는 10월을 ‘묵주 기도 성월’로 지냅니다. 성모 어머님께 묵주 기도를 바치면서 ‘예수님과 성모님의 신비들’, 또는 성 바오로 6세 교황님의 말씀대로 ‘복음서 전체의 요약’을 깊이 있게 묵상하며 믿음을 더욱 다져나가는 가운데, 세계 평화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의 배경은 해마다 맞이하던 ‘파스카 축제’입니다. 이집트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결정적인 구원사건을 기념하던 이 축제는 이레 동안 거행되던, 장엄하면서도 가장 뜻깊은 축제였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가장 경건한 순례의 여정 속에서, 가장 결정적이고 역설적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파스카’, 세상과 인류의 ‘구원’을 이루실 구세주 예수님을 잃어버린 사건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나자렛까지는 약 150km, 도보로 4-5일 정도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하룻길을 걸어간 다음에야 비로소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니, 요셉과 마리아의 마음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기 위해 정신없이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오는 데 하룻길, 예루살렘에서도 온종일 찾아 헤맨 뒤에야 예수님을 만났으니, 꼬박 ‘사흘’이 걸린 셈입니다. 성전 뜰에서 “율법 교사들 가운데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던” 예수님을 향해, 성모님은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하시며, 당신과 요셉의 무너진 마음을 드러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요셉과 마리아는 물론 우리를 당혹하게 만듭니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 대답이 단순히 부모의 몰이해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신앙의 눈으로 감지합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의 신원을 밝히시는 데,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아들’로서 늘 아버지의 집에서 아버지와 함께하는 존재임을 드러내시는 데 목적이 있음을 봅니다. 부모와의 관계, 친지와의 관계, 나아가 이러저러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인간의 상식과 이해력’을 벗어나는 일이 또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이 언제나 하느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임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성모님은 가브리엘 대천사를 통해 수태 고지를 받으셨을 때도(루카 1,29), 목동들이 아기 예수님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 주었을 때도(루카 2,19), ‘인간의 상식과 이해력’을 벗어나는 이 모든 일을 이미 ‘마음속에 간직’하고 계셨던 터였습니다. 오늘 다시금 체험하신, 마음에서 영원히 지워버리고 싶은 사건 이후, 성모님은 예수님이 복음을 전파하시면서 받아들이셔야 했던 갖은 모욕과 반대와 박해, 나아가 십자가상 죽음에 이르기까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셨던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심으로써, 하느님의 뜻에 다가설 수 있는 지혜와, 최후의 순간까지 예수님과 함께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으셨을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구세주 예수님을 또 한 번 잃으시고 ‘사흘’ 동안 눈으로 뵐 수 없었던 무덤의 시간 속에서도, 성모님은 꼭 다시 찾아뵐 수 있으리라는 확신과 희망을 잃지 않으셨으며, 그 확신과 희망은 성모님을 결정적인 구원사건인 ‘파스카 축제’의 기쁨으로 이끌었을 것입니다.

 

이 한 달, 묵주 기도를 열심히 바치며 성모님을 공경하고 그분의 삶을 본받을 것을 다짐하며, 주님을 잃어버린 것 같은 시간이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성모님이 그렇게 하셨듯이, 포기하지 않고 “돌아가 주님을 찾아뵙는” 기쁨을 누리는, 환희의 나날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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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6주간 토요일]

 

따름의 기쁨

 


오늘 말씀은 “일흔두 제자가 기뻐하며 돌아와 말하였다.” 하는 말씀으로 열립니다. 이는 엊그제 복음 말씀이었던, 일흔두 제자 파견에 앞선 예수님의 ‘선교 지침’ 대목을 전제로 합니다. 제자들이 “기뻐하며 돌아왔다.”라고는 하지만,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이 기쁨에는 ‘하느님의 일’을 훼방하거나 가로막는 적대 세력인 사탄과 맞서 싸우며 겪어야 했던 온갖 역경이 담겨 있음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마치 순진하고 행복에 겨운 아이들처럼, 들뜬 마음으로 ‘파견하신 분’에게 보고합니다. 무엇보다도 적대 세력이 스승 예수님의 이름 아래 굴복하고만 현실 앞에 기쁨과 보람을 감추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가장 인상적인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선교의 길을 걷는 동안, 곧 그들이 떠나있다 하더라도, 늘 그들과 함께하고 그들과 함께 일하셨음을 밝히십니다. 기도 안에서 예수님은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십니다. 이는 전적으로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러나, 다소 흥분해 있었던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은 진정한 기쁨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하여 일러주십니다: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물론 예수님이 주신 능력 덕분에 영들이 무릎 꿇는 현장을 목격한 일도 기쁨의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사람들이 제자들 덕분에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구원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야말로 참 기쁨의 원인임을 일깨우십니다. 하느님이 진정 원하시는 일이며, 이로써 제자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사람들로 자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제자들이 이룬 선한 행업 앞에서, 예수님은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십니다. 예수님은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신” 성부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십니다. 당신이 선교의 길로 파견하신 제자들은 당신 보시기에 ‘철부지들’, 곧 ‘마음이 가난하고 겸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최고의 학위 소유자나 지적인 선각자들, 또는 유명 인사들이 아니라, 대부분 고기잡이로 생계를 유지하던 순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요소는 그들이 쌓아온 학식이 아니라, 스승 예수님이 그들에게 부여해 주신 메시지의 진실성과 강렬한 신앙심이었습니다.

 

사도들 또는 제자들의 뒤를 이어, 초대 교회는 고유한 특권을 주시는 분으로 주님을 모시게 될 것입니다. 선교의 방법과 역량과 성과 모두 오로지 주님 덕분임을 고백하며, “철부지들”의 모습, 곧 주님이 “아버지의 모습을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으로서의 모습으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고귀한 신앙을 허락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리는 데 정성을 다하는, 보람 있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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