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기도
복음 저자 루카만이 전하는 오늘 이야기에서, 우리는 행동이냐 아니면 들음이냐, 또는 일이냐 아니면 기도이냐 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이 두 주제를 아우르는 현실을 목격합니다.
예수님은 마르타와 마리아를 대립시키려는 의도를 보이지 않으십니다. 무엇이 우선인지에 대하여 분명히 말씀하시나, 그렇다고 마르타의 몸짓을 단죄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마르타와 마리아, 둘 다 예수님에게 소중한 존재들이지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바가 동일한 사람들은 아닙니다. 마르타는 활동적이어서, 귀한 손님을 대접하는 데에서도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문제가 있다면 손님 대접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매여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과도한 염려는 주님을 모시기에 적합한 자세가 아닙니다. 주님 모심에 우선적이어야 하는 것은, 푸짐한 성찬을 나누는 일보다는, 먼저 주님을 중심으로 함께 모이는 일, 서로 만나는 일, 서로 사랑을 주고받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있습니다. 끝없이 지속되는 들음의 시간! 어떤 내용이길래, 언니 마르타를 도와야 한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분 말씀 듣기에 푹 빠져 있는 것일까? 복음 말씀은 이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남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마리아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점과,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의 말씀 듣기에 지칠 줄 모른다는 점입니다.
한편, 예수님의 대화 상대로 등장하는 마르타는, 들음 또는 기도를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행위로 취급하는 사람들처럼, 조바심을 감추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분명 당신을 식사에 초대하고 식사 준비를 위해서 바삐 움직이는 마르타를 보시고 존경과 함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부족함이 있다면, 조바심의 도가 지나치다는 점입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있구나.” 잠시라도 함께 앉아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주님께 대한 사랑이 구체적인 행동을 통하여 드러날 수 있는 것처럼,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현존을 가슴 깊이 체험하는 행위 또한 사랑의 위대한 표현임을 인식하기를 바라셨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행동과 들음, 일과 기도, 그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의 문맥으로 본다면, 예수님은 일에 치우치는 모습은 문제가 될 수 있어도, 들음과 기도에는 아무리 치우치더라도 문제가 될 것이 없음을 은연중에 강조하시는 듯합니다. 우선은 당신의 뒤를 이어 지상교회를 책임져야 할 사도들이 그대로 따라야 할 대목이며, 다음으로 일보다는 기도에 늘 부족함이 많은 우리가 명심해야 할 지점입니다.
오늘 하루도, 들음과 기도 안에서 주님을 뵙고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를 살핀 다음, 구체적 행동을 통하여 그 뜻을 펼쳐나가는, 의미 있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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