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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19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10-19 조회수 : 31

복음: 루카 12,13-21: 어리석은 자야!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15절)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께 속한 것이며, 재물은 그 생명의 보증이 될 수 없다. 어리석은 부자는 하느님의 주권을 잊은 채 “더 큰 것들을 지어, 곡식을 모아 두어야겠다.”(18절)라고 한다. 그는 자신의 생명과 미래까지 ‘내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20절) 이 말씀은 인간의 어리석음, 즉 하느님을 배제한 자기 확신에 대한 심판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하느님이 너에게 주신 재산을 하느님을 위해 쓰지 않는다면, 그 재산은 너를 해칠 것이다. 네가 가난한 이에게 나누지 않은 것은, 너의 것이 아니라 도둑질한 것이다.”(Sermo 50,6 요약)라고 하였다. 그리스도인에게 진정한 부유함은 소유의 많음이 아니라, 나눔의 풍성함에 있다. 하느님 안에서 부유한 사람은 자기 안에 머무르지 않고, 자비를 통해 이웃과의 친교를 확장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말한다. “가난한 이의 배는 너의 곳간보다 더 안전하다. 너의 곡식을 땅속 창고에 두지 말고, 하늘에 두어라. 가난한 이의 손이 곧 하늘의 문이다.”(Homilia in Lucam 12,18 요약) 이 가르침은 복음의 중심에 있는 ‘사랑의 경제’를 드러낸다. 즉, 재물은 단순히 소비나 축적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는 통로로 주어진 것이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루카 16,9) 이 말씀은 재물 자체가 악하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을 사랑과 자비의 도구로 바꾸라는 초대이다. 교리서는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을 특별한 사랑으로 사랑하시며, 그들의 고통 속에서 당신 아드님의 얼굴을 보게 하신다.”(2448, 2449항 참조) 따라서 재물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곧 하느님 사랑의 구체적 표현이며, 하늘의 곳간에 보물을 쌓는 길이다.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은 재물보다 덕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자기 손으로 가난한 이를 돕고, 고통받는 이의 슬픔을 덜어주는 사람이다. 그의 부는 ‘사랑의 기억’ 속에 보존되고, 그가 떠날 때 따라오는 것은 오직 선행뿐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의 말처럼, “죽은 자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다. 그러나 그의 자비는 그를 따라 하늘로 올라간다.”(Homiliae in Matthaeum 79,5 요약) 

 

재물은 우리 손을 떠나지만, 자비는 우리를 하늘 나라로 이끈다. 사람의 생명은 소유의 양이 아니라, 사랑의 깊이에 달려 있다.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만이 진정한 부자이다. “가난한 이의 눈물이 너의 기쁨이 되고, 그의 미소가 너의 상급이 되게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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