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루카 12,39-48: 충성스러운 종에 대하여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43절) 깨어 있는 사람은 자기 자리에서 충실히 일하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충성이란 단순한 ‘충성심’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 안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소명을 끝까지 살아내는 신실함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께 충실하다는 것은 그분의 뜻을 사랑하는 것이며, 그 뜻을 사랑하는 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Enarrationes in Psalmos 36,1 의역)
주님은 특히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42절)를 칭찬하신다. 이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과 은총을 나누는 사명을 가리킨다. 교회의 사목자나 교사, 부모, 혹은 공동체의 책임자는 모두 이 부르심을 받았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한다. “사목자는 하느님의 양 떼를 먹이는 자다. 그러나 그가 제때에 양식을 주지 않는다면, 그 양들은 굶주려 흩어질 것이다. 주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영혼 하나하나는 그리스도의 피로 산 이들이다.”(Homiliae in Matthaeum 77,3 의역) 따라서 이 복음은 특히 교회 안의 책임자들에게 주어진 깨어 있음의 경고이자 사랑의 명령이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47절) 이 말씀은 책임의 원리에 따른 정의의 선언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신다.”(48절) 성 그레고리오는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한다. “지식이 많은 이가 행함이 부족하다면, 무지한 죄인보다 더 무겁게 심판받는다. 빛을 받았으면서 그 빛 아래에서 죄를 짓는다면, 어둠 속의 죄보다 더 큰 죄이다.”(Homiliae in Evangelia 9,1 의역)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총과 지식, 직무, 재능은 모두 선익을 위한 도구다. 그것을 자기 이익이나 명예로 삼을 때, 그 은총은 오히려 심판의 기준이 된다.
참된 집사는 자기 주인이 돌아오실 때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늘 주인의 뜻 안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모범은 바로 주인이면서 종이 되신 사랑이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마르 10,45) 그리스도인의 충성은 바로 이 사랑의 섬김에 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덧붙인다. “교회의 머리는 섬김으로 다스린다. 사랑이 없는 통치는 주님의 이름으로 행해진다 해도 폭력일 뿐이다.”(De Sacerdotio, II,4 의역)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다양한 은총과 책임을 주셨다. 지식, 재능, 시간, 권한, 재물, 그리고 사랑받은 경험까지도 모두 ‘맡겨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 일에 동참시키기 위해 은총을 주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자비의 실천으로 돌려 드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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