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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22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10-22 조회수 : 61

복음: 루카 12,49-53: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49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불”은 단순한 심판의 불이 아니라, 성령의 불, 곧 하느님의 사랑과 말씀의 불이다. 이 불은 인간의 마음을 정화하고, 새롭게 하며, 불태워 거룩하게 만드는 성화(聖化)의 불이다. 성 암브로시오는 이렇게 해석한다. “그리스도께서 땅에 오신 것은 우리 안에 성령의 불을 지피기 위함이다. 이 불은 냉담한 마음을 녹이고, 죄의 얼음을 태워 없애며, 신앙의 열정을 일으킨다.”(In Lucam, 7,132 의역) 이 불은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던 바로 그 말씀의 불이다. 

 

“내가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50절) 이 “세례”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세례, 곧 수난과 죽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세례는 우리를 위한 속죄의 제사이며, 사랑의 완성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구절을 이렇게 주해한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세례는 물이 아니라 피였다. 그분의 십자가는 세례의 통로가 되었고, 그분의 피는 세상의 죄를 씻는 물이 되었다.”(Homilia in Matthaeum, 85,3 의역) 그분의 세례는 인간의 죄를 정화하는 불이며, 그 불 속에서 사랑은 완성되었고, 구원을 위한 정화의 불이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51절) 이 말씀은 참된 평화는 진리의 불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복음의 불이 타오를 때, 그것은 내면으로부터 갈등을 일으킨다. 하느님을 택할 것인가, 세상을 택할 것인가? 성 예로니모는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신 분열은 죄의 일치와 악의 평화를 깨뜨리는 것이다. 세상의 평화가 죄 안에서 이뤄진다면, 그 평화는 불의의 평화일 뿐이다.”(Commentarium in Lucam, 12,51 의역) 이 분열은 결국 우리를 선택의 자리로 이끈다. 하느님을 첫째로 섬길 것인가, 아니면 세상의 편안함을 따를 것인가? 하느님을 외면하는 자는 결코 참된 사랑의 질서를 세울 수 없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묵상한다. “우리 안에는 두 불이 타오른다. 하나는 하느님의 사랑의 불이고, 다른 하나는 탐욕의 불이다. 전자는 영혼을 위로 올리고, 후자는 땅으로 끌어 내린다.”(Enarrationes in Psalmos, 38,10 의역) 그리스도의 불은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싸움을 일으킨다. 성령의 불이 타오르는 영혼은 자신 안의 죄와 싸우며, 내적 분열을 통해 정화되어 간다. 그 불은 고통스럽지만, 그 불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집, 곧 거룩한 성전으로 변화된다. 예수님께서 지르신 불은 파괴의 불이 아니라 사랑의 불, 정화의 불, 복음의 불이다. 그분의 불은 세상을 새롭게 하고, 우리를 불타는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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