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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23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10-23 조회수 : 51

복음: 루카 12,54-59: 법정으로 가는 길에서 화해하도록 힘써라. 

 

“너희는 서쪽에서 구름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곧 ‘비가 오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54-56절)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날씨의 변화를 예측하듯이, 구원의 때와 회개의 때를 분별하라고 하신다. 성 베다 존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날씨의 징조를 읽을 줄 알면서 주님 구원의 표징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눈이 멀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닫혀 있기 때문이다.”(In Lucae Evangelium, 12,54 의역)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다는 것 자체가 이미 구원의 표징이며,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마지막 시대의 결정적 징조이다. 우리가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표징을 보지 못한 것이다.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재판관에게 갈 때, 도중에 그와 합의를 보도록 힘써라.”(58절) 우리는 모두 죄의 빚을 지고 주님께 나아가는 채무자들이다. 그런데 아직 “길 위에” 있을 때, 곧 살아 있는 동안에 주님과 화해해야 한다. 성 암브로시오는 이 구절을 이렇게 풀이한다. “고발자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말씀은 우리의 양심을 고발하고, 우리를 회개로 이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과 화해하면, 심판관 앞에서 고발당하지 않게 된다.”(Expositio Evangelii secundum Lucam, 7,181 의역) 말씀을 따라 살면 우리를 변호하지만, 말씀을 거슬러 살면 우리를 고발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59절) 이 구절은 영혼의 정화와 최종 심판의 실재를 암시한다. 하느님의 자비는 크지만, 그 자비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에게는 정의가 남는다. 회개하지 않은 죄는 언젠가 반드시 갚아야 할 빚이 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만일 우리가 지금, 이 세상에서 스스로 벌을 받지 않는다면, 저세상에서는 정의가 우리를 징벌할 것이다. 그 감옥은 하느님의 자비가 더 이상 역사하지 않는 곳이다.”(Sermo 37,3 의역) 그렇기에 주님께서 주신 오늘, 이 순간이야말로 은총의 시간, 회개의 기회다.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2코린 6,2) 

 

하느님과 화해하는 일은 동시에 이웃과의 화해를 요구한다. 우리가 이웃에게 진 빚, 용서하지 않은 마음, 해를 끼친 행동은 모두 하느님 앞에 빚으로 남는다. 그리스도인의 회개는 개인적 뉘우침에 머물지 않고, 관계의 회복으로 이어져야 한다. 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죄는 하느님과의 친교를 끊을 뿐 아니라, 교회와의 일치에 상처를 입힌다. 고해성사는 하느님과의 화해를 이루며 동시에 교회 공동체와의 화해를 회복시킨다.”(1440항) 그리스도의 피로 화해한 우리는 이제 세상에서 화해의 봉사자가 되어야 한다.(2코린 5,18) 재판관이신 주님 앞에 서기 전에, 우리는 ‘화해의 길’에서 ‘은총의 길’을 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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