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를 위한 유예 기간
앞서 예수님은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표징들을 보고 우리 모두 회개의 필요성을 절감하도록 여러 차례 가르치신 바 있습니다. 부정할 수 없는 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주어진 시간들을 유예의 시간들로 받아들이고 잘 활용해야 한다는 다짐을 새롭게 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어떤 사람들이 와서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바치려던 제물을 피로 물들게 한 일을 예수님께 알렸다.” 하는 문구로 시작됩니다. 이 사건에 대한 보고를 접하시고 예수님이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되물으시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이 피의 사건을 죄의 결과로, 따라서 당연한 결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전제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이러한 인식은, 스스로 의인이라 자처하면서, 우리에게는 절대로 닥치지 않으리라는 확신과 함께 희망을 담고 있는 현실을 드러냅니다.
군중을 가르치시면서 때로 여러 가지 사건을 설명하기도 하시는 예수님은 먼저 이와 같은 단순한 현세적 상선벌악 개념, 지상에서 이미 죄와 응벌 사이에 늘 일정한 관계가 성립된다는 개념을 거부하십니다. 오히려 하느님은 ‘빌라도’처럼 어떤 한 인간의 만행에서 비롯되는 ‘인위적인 요소’만이 아니라, ‘실로암 탑’ 사건처럼 ‘자연적인 요소’를 활용하여 인간을 반성과 회개의 길로 이끌어가고자 하십니다. 인위적인 또는 자연적인 이 사건들은 심판의 날은 예기하지도 않은 때 다가오고, 준비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맞이하게 될 것임을 강조할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기에, 회개하지 않는다면 똑같은 방법으로 멸망하고 말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처럼 인간에게 두려움을 주는 가르침만으로 만족하지 않으십니다. 이어지는 이야기, 곧 포도밭 주인과 재배인과 무화과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통하여 또 다른 중요한 가르침을 주고자 하십니다. 무화과나무는 다른 과일나무와 달리 오랜 기간 기다릴 필요 없이, 새로 나온 가지에서 바로 열매를 맺는, 성장 속도가 매우 빠른 수종입니다. 봄에 묘목을 심으면 같은 해 늦여름부터 첫 열매를 맛볼 수 있으나, 본격적인 정상 수확은 나무의 수형이 완전히 자리 잡는 4년 차부터 가능한 나무입니다. 따라서 삼 년 동안 아무 열매도 내지 않았다는 현실은, “땅만 버릴 뿐”, 앞으로도 열매를 낼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는 심증을 갖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니 이것을 잘라 버리게.” 그러나 포도 재배인은 주인에게 간곡히 청하여,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도록 1년의 유예 기간을 얻어 주며, 열매를 맺는 데 자신도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합니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구원이라는 주제로 성부 하느님과 성자 예수님과 우리 인간을 비유하는 말씀임을 쉽게 알아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버리십시오.”
우리 가톨릭 신앙인들은 ‘명오(明悟)가 열린 시기’ 이후, 곧 ‘선과 악을 판단할 능력’을 갖춘 시기 이후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성자께서 선사해주신 유예의 시간을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인위적이든 아니면 자연적이든 온갖 불행 속에서조차 이러한 시간을 살고 있음을 더욱 명심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하느님 앞에 늘 부족하고 의롭지 못한 존재임을 고백하며, 성자께서 마련해 주신 이 시간을 회개의 삶으로 채워나가겠다는 다짐을 앞세워야 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 이 하루의 시간을 다시 허락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이 날이 회개를 위해 주어진 마지막 시간이라는 의식으로 기도로 하느님의 뜻을 찾고, 희생과 봉사로 그 뜻을 실천하는 가운데, 기억에 남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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