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주보

수원주보

Home

게시판 > 보기

오늘의 묵상

10월 25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10-25 조회수 : 46

복음: 마태 22,34-40: “네 주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오늘 복음은 율법 전체를 요약하는 “사랑의 이중계명”을 중심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다시 일깨워 준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둘로 나뉠 수 없는 하나의 계명이다. 하느님 사랑은 그분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 안에서 구체화 되어야 하고, 이웃 사랑은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실제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1. 율법의 중심: 사랑의 계명

복음에서 율법 학자가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36절)라고 묻는다. 이 질문은 단순한 도덕적 호기심이 아니라, 예수님을 시험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613개의 율법 조항 가운데 어느 것을 ‘가장 큰 것’으로 보는가를 통해, 예수님을 특정한 종파의 입장으로 몰아넣으려 한 것이다. 예수님은 신명기 6,5을 인용하신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37절) 이 말씀은 유다인의 기도 ‘쉐마 이스라엘’(신명 6,4-9)의 핵심으로, 하느님께 대한 전인적 사랑(총체적 헌신)을 의미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신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39절; 레위 19,18)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분리될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두 계명을 “이와 같다.”라고 말씀하시며, 그 위계의 차이를 없애고 하나의 사랑으로 결합시키신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40절) 

 

2. 사랑의 통합: 하느님 안에서 하나 된 인간 사랑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구절을 해석하며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여라.”(In Epistula Ioannis ad Parthos Tractatus 7,8 의역) 그의 의미는 단순하다. 하느님 사랑 안에 머무는 이는 이미 그분의 뜻 안에서 살기 때문에, 그 사람의 행위는 모두 사랑의 질서 안에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하느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며, 그 안에서 모든 인간을 그분의 모상으로 존중하는 것이다. 요한 사도도 같은 말을 한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1요한 4,20) 이 구절은 “하느님 사랑”이 결코 추상적 감정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위”임을 명백히 보여 준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진실성을 이웃 사랑의 실천으로 드러내야 한다. 

 

3. 강생의 신비와 인간에 대한 사랑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다.(창세 1,26) 그러나 강생의 신비를 통하여, 이 모상은 더 완전하게 드러났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은 하느님의 아들됨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분을 닮아가는 “신화”(神化)의 여정을 걷게 되었다. 성 이레네오는 말한다. “살아 있는 인간이 하느님의 영광이며,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을 보는 것이다.”(Adversus Haereses IV,20,7) 즉, 인간은 그 자체로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성전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 드리는 사랑과 같은 사랑으로 인간을 사랑해야 한다. 이 사랑이야말로 강생하신 하느님의 뜻을 완성하는 길이며, 십자가 위에서 완전히 드러난 사랑이다. 

 

4. 하느님 중심적 박애: 사랑의 질서 안에서

탈출기 22,20-26은 이미 이웃 사랑을 단순한 ‘윤리적 의무’가 아니라, ‘신앙의 의무’로 규정한다. “너희가 과부나 고아를 억누르면, 내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어줄 것이다. 나는 자비하다.” 하느님 사랑이 없다면 이웃 사랑도 공허하고, 이웃 사랑이 없는 하느님 사랑은 거짓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한다. “그대가 성당 안에서 제단을 꾸미는 동안, 가난한 이가 굶주리고 있다면 그 제단은 하느님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설교집 요약) 이처럼 참된 예배는 성전 안의 기도가 아니라, 세상 안에서 사랑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는 정의와 자비의 행위 안에서만 참된 제사가 되기 때문이다. 

 

5. 사랑의 종합: 우상으로부터의 자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두 계명은 단순한 도덕률이 아니라, 인간이 우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길이다. 하느님을 첫 자리에 모시지 않으면, 인간은 자신이 만든 것(권력, 돈, 명예)의 노예가 된다. 그것이 곧 우상숭배다. 바오로 사도는 말한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로마 13,10) 사랑은 모든 계명의 요약이며,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다리다.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할 때, 우리는 동시에 그분의 모상인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 

 

6. 결론: 사랑의 십자가

이 두 계명은 수직(하느님 사랑)과 수평(이웃 사랑)의 십자가를 이룬다. 예수님께서는 그 십자가 위에서 하느님께 대한 완전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완전한 사랑을 동시에 이루셨다. 따라서 우리도 십자가의 사랑 안에서 하느님과 형제에게 마음을 열어야 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37.39절) 이 사랑 안에서 모든 율법과 예언이 완성되며, 이 사랑 안에서만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 가운데 온전히 드러날 것이다.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