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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29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10-29 조회수 : 35

복음: 루카 13,31-35: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아래 모으듯이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32절) 예수님께서 헤로데를 “여우”라고 부르신 것은, 세속 권력의 교활함과 거짓된 힘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그분은 위협 앞에서 도망치거나 숨지 않으신다. 오히려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스스로 걸어가시며 말씀하신다.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32절) 이 “사흘째 되는 날”은 십자가와 부활을 암시하는 말씀으로,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향해 자유롭게 나아가시는 순명의 메시아로 드러나신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피하고자 하여 죽음을 면하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죽음을 정복하시려 나아가셨다.”(Homiliae in Matthaeum 78,2) 그분은 두려움 속에서도 하느님 계획의 필연성을 받아들이신 분이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33절) 예루살렘은 하느님의 현존이 머무는 도시이자 동시에 하느님의 예언자들을 거부한 도시로 상징된다. 성 스테파노의 순교 직전 설교처럼, “여러분은 줄곧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사도 7,51)라는 말이 이를 증언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말씀을 해석한다. “예언자가 예루살렘에서 죽는다는 것은, 진리가 그 안에서 거부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흘린 피가 그들의 구원을 이끌어낼 것이다.”(Sermo 113,3)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거부당할 것을 아시면서도 사랑으로 찾아가신다. 그분의 걸음은 회개를 위한 마지막 초대였다.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이”(34절) 이 장면은 구약의 하느님을 떠올리게 한다. 시편은 “당신 깃으로 너를 덮으시어 네가 그분 날개 밑으로 피신하리라.”(91,4)라고 노래한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날개 아래로 모든 이들을 모으려는 하느님의 얼굴이다. 성 예로니모는 이 구절을 이렇게 말한다.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이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품으신다. 그분의 날개는 십자가의 두 팔이며, 그 안에 인류가 피난처를 얻는다.”(Commentarium in Matthaeum 23,37) 그러나 예루살렘은 “마다하였다.”(34절) 즉, 하느님의 자비를 거절하는 완고함은 결국 “너희 집은 버려질 것이다.”(35절)라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것은 하느님의 벌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자비를 거부한 결과이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하고 말할 날이 올 때까지”(35절)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으로 희망을 주신다. 지금은 눈앞의 주님을 거부하지만, 언젠가 그들은 회개하여 그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날개로 우리를 덮으시려 할 때, 우리는 우리의 완고함으로 그늘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성 베르나르도, Sermo de Diversis 12,3 요약) 그분의 날개 아래 머문다는 것은 그분의 뜻 안에 머무는 것이며, 그분의 사랑 안에 피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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