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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30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10-30 조회수 : 41

복음: 루카 14,1-6: 안식일에 대한 논쟁 

 

복음의 첫머리에서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지켜보았다.”(1절) 그들은 율법의 ‘조항’에는 충실했지만, 율법의 영(靈)을 잃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율법은 사랑 안에서 완성된다. 사랑이 빠진 율법의 준수는 껍데기일 뿐이다.”(In Epistolam Ioannis ad Parthos Tractatus 7,8 재구성)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목적이 사랑임을 드러내기 위해 바리사이의 시선 앞에서 기적을 행하신다. 그분의 행동은 율법을 폐지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본래의 정신, 자비와 생명을 위한 율법을 회복하려는 것이다.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3절) 예수님의 질문은 하느님이 주신 율법의 근원적 의미를 다시 묻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 누가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일지라도 바로 끌어내지 않겠느냐?”(5절) 율법의 참된 정신은 사람을 살리는 것, 생명을 보존하는 것이다. 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진정한 뜻을 밝히셨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한 것이며’(마르 2,27), 하느님께 찬미와 자비를 드러내는 날이다.”(2173항) 성 이레네오도 말한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위하여 율법을 주셨지, 율법을 위하여 인간을 만드신 것이 아니다. 율법은 사랑을 가르치는 스승이다.”(Adversus Haereses IV,16,5 요약) 예수님은 이 말씀으로 인간을 얽매는 율법의 굴레를 끊으시고, 자비의 율법을 제정하신다. 

 

“그들은 잠자코 있었다.”(4절)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질문에 침묵한다. 그 침묵은 양심이 스스로를 고발하는 침묵이었다. 그들은 ‘규정’을 알지만, 그 규정의 주인인 하느님을 모르는 자들이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장면을 이렇게 주해한다. “그들은 율법의 문자는 지켰으나, 율법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거부했다. 그들의 침묵은 그들의 심판이었다.”(Homiliae in Matthaeum 40,3 요약) 

 

하느님께서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참조: 탈출 20,8-11; 신명 5,14-15)라는 계명을 주셨다. 이는 하느님께 대한 찬미의 날이자, 인간의 해방과 회복의 날이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신 것은 단지 기적의 표징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의 시작, 곧 구원의 시대가 열렸음을 알리는 사건이다. 성 그레고리오는 말한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것은 새로운 창조의 첫 표징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은 죄의 속박에서 쉬게 된다.”(Homiliae in Evangelia 32,2 요약) 그분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안식의 진정한 의미, 영혼의 평화가 이루어진다. 성 베르나르도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사랑이 없는 계명 준수는 영혼을 억누르고, 사랑 안에서의 계명 준수는 영혼을 자유롭게 한다.”(Sermo de Diversis 33,5 의역) 우리의 안식일, 곧 주일은 형식이 아닌 사랑의 날,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하고 생명을 일으키는 날이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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