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모후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평화를 주시는 하느님”
오늘 하느님께서는 성모 마리아를 통하여 평화를 얻는 길을 가르쳐주십니다. 이 평화는 전쟁과 다툼이 없는 고요함을 뜻하지 않고, 두려움이나 근심을 피하거나 모른 척하고 지나가면서 얻어지는 거짓 평화가 아닙니다. 전쟁과 다툼, 두려움과 근심은 이 세상사람 그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인 것입니다. 사실 우리에게서 평화를 앗아가는 것들은 그런 거대한 전쟁이나 심각한 갈등과 다툼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그 처지가 나약하여 아주 작은 일에도 쉽게 그리고 즉시 평화를 잃어버리곤 합니다. 가장 작은 원인, 그러나 가장 보편되고 근본적인 것들을 생각해 보면 사람과 사람이 마주하는 가운데서 지극히 작은 것들, 오해와 곡해, 욕심과 몰인정에서 생깁니다.
그렇다면 평화를 해치는 원인이 그렇게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면 평화를 가져오는 것들도 그렇게 작은 것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성모님은 ‘겸손한 종’이셨습니다. 겸손이 평화의 길입니다. 서로 높아지고 다투어 많은 것을 소유하며 잘난 척하려다보니 도통 서로를 들어주지 못하고 동등하게 받아주지 못합니다. 그 결과는 서로 얻는 것 없이 원수 한 명을 만드는 것으로 끝납니다. 안타깝게도 자신을 낮추고 줄임으로써 내 앞에 있는 사람을 들어주고 받아주고 인정하는 것이 언제부터인가 상대방에게 비굴해지거나 비굴해진다는 것으로 잘못 이해되고 있는데, 사실은 상대에게 겸손함을 보이는 것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얻는 일이고 나를 그 사람에게 이해시키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다투어 경쟁할 일이 없으니 마음의 평화도 얻고 그 사람의 약함뿐만 아니라 강함도 사랑하게 됩니다. 성모님은 이해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서 하느님의 전능하심과 능력을 사랑하여 마침내 평화를 얻으신 분입니다.
둘째, 마리아는 ‘충실한 어머니’셨습니다. 충실함 혹은 성실함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먼저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사람이나 일을 그 사랑 안에서 소중히 여기며 사는 것입니다. 참 사랑은 성실합니다. 그 사랑에 비록 힘겨움과 위기도 있을 수 있지만, 또 다른 사람의 모난 이견(異見)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자신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맡겨진 사람과 일을 소중히 여기며 살기에 만족할 줄 알고, 믿음으로 기다리며 희망으로 견디어 냅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품고 있는 사람을 흔들어 놓을 수는 있지만 성실함이 가져다 준 평화는 빼앗기지 않습니다. 순교자들이 죽음과 고통 앞에서도 평화를 누렸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셋째, 성모님은 ‘그리스도의 제자’이셨습니다. 제자가 스승에게 제일 먼저 본받는 것은 평상시에 드러난 스승의 삶입니다. 예수님은 늘 기도하셨습니다. 기쁘고 편안할 때만이 아니라 번민에 시달릴 때에도 눈물과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심으로써 하느님 아버지께 의탁하여 위로와 용기를 얻어 늘 평화를 유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은 일상의 모든 순간과 결정적인 순간에 기도 안에서 성령의 은혜로 평화를 얻고 그것을 형제들과 나누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주님 곁에서 함께 기도하며 평화를 누릴 뿐만 아니라 그 평화를 나누는 사람입니다.
평화는 이렇게 작은 것에서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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