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3일 연중 제21주일
(요한 6,60-69; 여호 24,1-2ㄱ.15-17.18ㄴㄷ; 에페 5,21-32)
찬미 예수님!
우리도 오늘 복음에 나오는 시몬 베드로와 한 마음으로, 주님께 꼭 붙어있으려는 마음으로, 함께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러한 결심을 자주 입으로 되뇌이고 마음에 새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의 이러한 결심과 관련해서 두 번째 독서인 에페소서의 말씀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주님께 꼭 붙어 있으려는, 주님을 섬기겠다는 결심만으로는 부족하구나. 나의 삶 안에서 주님께 붙어 있다는 것을, 주님을 섬긴다는 것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로구나.’
바오로 사도는 아내에게 주님께 순종하듯이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남편에게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해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가 정말로 주님을 섬긴다면, 주님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특별히 허락하신 이에게 잘 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주님께 해드리듯이 그렇게 말입니다.
그런데 그게 쉽나요?
절대 쉽지 않습니다.
나는 잘해주고 싶은데 상대방이 꼭 잘해줄 수 없게 만드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혼인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이 말씀하시는 가장 주된 이유는 성격차이라는 것입니다.
성격차이가 너무 나서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맞는 말씀 같습니다.
성격차이가 문제입니다.
그런데 성격차이가 없는 부부도 있나요?
이런 부부를 만나기는 어렵지요.
성격이 차이가 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지요.
내가 모르고 나와 맞지 않는 부분을 일단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거지요.
복음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 것이지요.
그럼 남아있는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의 말씀이 쉽게 들렸겠습니까?
똑같이 쉽지 않았겠지만 그들은 예수님께 대한 믿음으로 귀에 거슬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예수님께 남아 있었던 것이지요.
에페소서에서도 바오로 사도는 남편과 아내의 결합에 대해 말하면서 이것을 큰 신비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환경 속에서 오랜 기간 동안 살아왔던 두 사람이 만나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쉽지 않은, 그야말로 하나의 신비이지요.
우리가 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혼인생활이 하나의 신비라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께 대한 구체적인 섬김으로 남편과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여타의 다른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를 만나고 이야기할 때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하면서, 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그가 하나의 신비 안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대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의 모든 관계를 통해 주님을 잘 섬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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