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7일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루카 6,6-11; 콜로 1,24-2,3)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얼핏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루만 더 기다리시지. 그러면 아무런 마찰도 없었을 텐데.’
예수님은 왜 굳이 마찰도 불사하면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안식일에 고쳐준 걸까요?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시는데, 여기서 사람의 아들은 예수님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람들을 이야기하시는 것 같습니다.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은 율법을 어기고 있는 제자들을 변호하고, 아픈 이들을 고치시고 하니까 말입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당신이 아닌 우리를 향해 서 계십니다.
예수님은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보면서 손이 오그라들어 지금까지 어렵게 살아온 그의 힘겨운 인생을 모두 보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당신이 고발을 당하더라도, 어떤 어려움을 겪더라도 한시도 지체할 수 없을 만큼 사랑이 당신 안에서 불쑥불쑥 튀어 올라오지요.
우리도 예수님처럼 사랑의 마음으로, 기꺼운 마음으로 나에게 불이익이 찾아오더라도 사랑을 사는데 주저함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오늘 독서의 첫 부분에서 바로 예수님의 삶을 기쁘게 사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제가 아는 수녀님의 이야기가 생각이 나네요.
수녀원에 입회하기 전에 저희 동네에서 자취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직장에 다니면서 방송 통신 대학에도 다녔는데, 평소에는 집에서 공부하다가 시험은 학교에 가서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험을 보는 전날 저녁에 함께 자취를 하는 직장 동료가 엄청 아팠습니다.
이분은 직장 동료를 간호하기 위해 기꺼이 시험을 포기하고, 한 학기를 더 수강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이 적극적인 사랑에 기꺼이 동참하는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순교자 성월을 지내는 우리도 순교자들처럼 예수님의 적극적인 사랑에 동참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불이익도 불사하는 적극적인 사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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