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2일 연중 제11주일
(루카 7,36-8,3; 2사무 12,7ㄱㄷ-10,13; 갈라 2,16.19-21)
찬미 예수님!
여러분은 겸손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겸손은 무엇 무엇인체 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지금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그런데 이게 좀처럼 쉽지 않지요.
남들에게 나의 단점을 보이고 싶지도 않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지요.
남들에게 좀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 나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보다 좀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싶어합니다.
이게 반복되다 보면 자기가 본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도 그런 사람인 것처럼 그렇게 자기도 생각하고 행동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날 수 있는 거지요.
이 겸손이라는 것은 솔직함과 연결이 되는데, 솔직하지 못한 사람과는 관계를 계속 이어나갈 수가 없지요.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1독서에서는 나탄 예언자가 다윗에게 우리야의 아내를 자신의 아내로 삼은 일을 꾸짖는 내용이 나옵니다.
여기서 저는 먼저 이것을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왜 나탄 예언자에게 이것을 말하도록, 다윗 임금에게 가서 이것을 말하도록 하셨을까?’
‘다윗 임금이 잘못을 저질렀으면 그를 벌하시면 될 일인데, 왜 다윗 임금에게 가서 그가 벌인 잘못을 그대로 이야기하도록 하셨을까?’
하느님께서는 다윗 임금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를 바라시는 거지요.
다윗 임금이 그 죄스런 상황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그냥 살아가고 있을 때에도 하느님께서는 다윗 임금이 뉘우치고 그 상황을 벗어나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우리보다도 먼저 우리가 그 죄를 뉘우치고 죄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신다.’
이것은 다윗 임금이 나탄 예언자의 말을 듣고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하고 자신의 죄를 솔직히 시인했을 때 곧바로 나탄 예언자가 한 말에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주님께서 임금님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제 네 집안에서는 칼부림이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이다.” 하고 무시무시한 말을 했었는데, 다윗 임금의 죄 고백에 바로 용서했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느님께서 이미 용서하기로 마음을 먹고 그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신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스런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아무래도 위축될 수밖에 없지요.
쪼그라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하고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그래 너는 죄인이야.’ 하고 우리를 죄인으로 낙인찍으실까요?
하느님께서 다윗 임금에게 그렇게 하시려고 나탄 예언자를 보내신 건가요?
절대 아니지요.
우리는 우리의 죄스런 모습 앞에,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도 잘 안 되는 우리의 모습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
우리에게는 우리의 구원자, 우리의 치유자이신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고 기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깊이 자각했다면 우리는 우리의 절대적인 지지자인 예수님께 기대야 합니다.
내가 나의 모습을 잘 정리하고 나서 주님께 나아오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유혹이고, 핑계일 뿐입니다.
두 번째 독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의 의로움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우리를 용서하고 싶어하시는 하느님 앞에 우리는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주님께 도우심을 청하는 겸손한 신뢰를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잘못에 대한 고백도 필요하고 용서에 대한 감사의 고백도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를 용서하고자 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기억하며 한 주간을 살아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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