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5일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마태 8,5-17; 애가 2,2.10-14.18-19)
찬미 예수님!
“처녀 딸 시온아, 네 파멸이 바다처럼 큰데, 누가 너를 낫게 하리오?”
오늘 1독서 애가의 말씀인데, 파멸이 바다처럼 큰 상황에 놓인 시온을 누가 낫게 할 수 있을까요?
애가의 말씀은 이렇게 계속 이어집니다.
“주님께 소리 질러라, 딸 시온의 성벽아.”
“주님 면전에서 네 마음을 물처럼 쏟아 놓아라. 길목마다 굶주려 죽어가는 네 어린 것들의 목숨을 위하여 그분께 네 손을 들어 올려라.”
지금 주님께 왜 이렇게 하라고 하는 거지요?
“누가 너를 낫게 하리오?”
주님께서 낫게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말씀은 주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다시 한 번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몹시 괴로워하고 있는 백인대장의 종을 고쳐주시는 분, 열병으로 드러누워 있는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주시는 분, 사람들이 데려온 마귀들린 이들과 앓는 사람들을 모두 고쳐주시는 분은, 복음사가가 이사야 예언자의 입을 빌어 말하는 것처럼 “우리의 병고를 떠맡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시는”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직접 우리의 병고를 떠맡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가 육체적인,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릴 때 우리는 아픈 우리 자신에게 집중하기 쉽습니다.
빨리 낫기를 바라면서 고통에서 벗어날 방도를 찾는데 힘을 쓰지요.
이런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주님과 멀어지는 것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마치 주님은 없는 듯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아픔의 순간에 누구보다도 주님께서는 우리의 병고를 떠맡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고 싶어 하신다는 것을 생각했으면 합니다.
복음에서 보면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의 말에 감탄하시며 이어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고통의 순간도 주님과 함께 한다면 그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초대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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