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가해)
오늘은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입니다.
먼저 영명축일을 맞이하시는 모든 분들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스도교를 표현할 수 있는 많은 단어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단어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신 나머지 인간이 되어 오셨고, 너무나도 사랑하신 나머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봉헌하셨습니다.
우리들에게 참 사랑이 무엇인지를 삶으로써 보여주신 분이 바로 오늘 기념하고 있는 요한 사도이십니다. 요한 사도께서는 주님의 죽음의 현장에서도 주님 곁을 떠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부활 역시 가장 먼저 체험한 사도였습니다.
열두 제자 중에 주님으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으셨던 제자였고,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삶도 가능했겠지만, 아마도 주님을 특별하게 사랑했기 때문에 그러한 사랑의 실천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자신의 신앙과도 같았던 예수님이 비참하게 돌아가실 때에도 그분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사도요한께서 보여주신 진정한 사랑은 그가 어떤 모습이든지 그의 곁을 떠나지 않는 것! 언제나 그와 함께 있어 주는 것!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요한께서는 특별한 방식으로 부활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사도의 모습에 비하여, 우리들은 너무도 자주 가족들과 이웃들의 모습에서 실망을 하고 상처를 받습니다. 내가 타인들에게 맞추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맞춰 주기만을 바라고, 그렇지 않으면 바로 등을 돌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나와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말 한 마디 잘못하면 나쁜 사람,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되어 버리는 속 좁은 우리들의 마음이 참 아쉽기만 합니다.
주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모습을 내 맘대로 지어냅니다. 그래서 나와 다른 방식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은 언제나 버림을 받기 마련입니다.
신앙마저도 맞춤 신앙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싶어서 때로는 저 자신도 많이 부끄럽고 아쉽기도 합니다. 좋은 것은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면서도, 행여 작은 것 하나라도 나를 어렵게 하는 것들에는 주님을 원망하는 우리의 신앙이 오늘도 사랑에 굶주리신 주님의 십자가를 더욱 무겁게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주님께 죄송할 뿐입니다.
성탄의 신비를 기념하는 이 축제시기에 우리들은 필연적인 십자가를 기억해야 합니다. 당신의 오심을 기뻐하면서도, 그분께서 왜 오셨는지를 바라본다면 우리의 기쁨은 십자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나의 기쁨을 위해서 오히려 더 많은 십자가를 이웃에게, 주님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기쁨 한 가운데 서서 우리는 반성해야 합니다.
오히려 주님의 십자가를 더 사랑했던 사도요한의 축일을 지내면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다시금 바라보게 됩니다.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약속임을 기억하면서 주님께 드린 우리의 약속들을 다시 한 번 되돌아 볼 수 있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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