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대축일(가해)
성탄 축제를 마치고 오늘 우리는 주님 공현대축일을 맞이합니다. 주님께서 공적으로 세상에 당신 모습이 드러내지심을 축하하는 날입니다.
오늘 복음으로 듣는 동방박사들의 방문은 바로 당신이 세상의 임금이시며 대사제이시며 구세주로 오셨음을 보여주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사건입니다.
동방 박사들은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을 경배하러 왔노라"고 말합니다. 밤하늘의 별들 중에 가장 밝게 빛나는 그분의 별을 따라 먼 길을 찾아온 동방 박사들의 이야기는 우리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창문을 열고 빛나는 별을 보며 상상 안에서 동방박사들과 함께 베들레헴을 향해 마음의 여정을 떠날 수도 있겠습니다. 가서 동방박사들처럼 우리가 지닌 가장 소중한 것을 아기 예수께 드릴 수 있다면!
아기 예수께서 받으시면서 가장 좋아하실 선물이 무엇일까 헤아려 봅니다. 우리가 지닌 그분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아닐까요? 동방 박사들도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각기 예물들을 드렸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찾아가서 경배를 드렸다는 사실이지요. 경배 드리면서 자신들을 봉헌한 것입니다. 그분들의 마음을 드린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동방 박사들이 바친 예물들은 바로 태어나신 아기 예수가 장차 어떤 분이 되실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함축하고 있습니다. 성전(聖傳)은 우리에게 세 동방박사의 이름을 전해주고 그들의 모습을 들려줍니다.
황금을 가져온 박사의 이름은 멜키오르입니다. 그는 백발이 성성하고 긴 구레나룻을 지닌 멋쟁이 할아버지입니다. 유향을 가져온 박사는 수려한 용모의 청년으로 가스파르라는 이름을 지녔습니다. 마지막으로 몰약을 가지고 온 박사의 이름은 발타사르이며 늠름한 풍채를 지니고 둥근 터번을 머리에 두른 중년의 남자라고 합니니다.
먼저 멜키오르가 가져온 황금이 상징하는 것은 아기 예수께서 이 세상의 왕으로서 오신다는 것입니다. 아기 예수는 세상을 다스리는 참된 임금으로서 오셨음을 상징합니다. 당시 황금은 가장 귀한 보물로 임금에게 드리는 예물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분명 임금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권력으로서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서 사람들의 마음을 다스리는 임금이십니다.
가스파르가 가져온 유향은 사제를 위한 예물입니다. 성전에서 제물을 바칠 때 사제는 유향을 사용했었지요.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시는 대사제로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제의 역할은 무엇보다 인간을 하느님과 만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사제라는 말의 라틴어 pontifex는 원래 다리를 놓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사제입니다. 그것이 장차 예수께서 하실 일입니다. 아니, 하느님이 인간이 되신 예수님이야말로 하느님과 인간을 하나로 잇는 다리 그 자체이십니다.
예수를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께로 나아갑니다.
발타사르가 가져온 몰약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위한 예물입니다. 몰약은 시신을 부패하지 않게 하는데 사용하던 귀한 물건이었지요. 예수께서는 역설적으로 죽으시기 위해서 태어나셨습니다. 바로 당신 자신의 생명을 바치심으로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구원자로서 오신 것입니다.
아직 구유에 누워 계시는 아기 예수께 바쳐진 이 예물들은 장차 이분이 어떤 분이 될지를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우리의 임금이시며 대사제이시고 구세주이십니다.
오늘 주님의 공현대축일을 지내며 우리도 임금이시며 대사제이시고 구세주이신 아기 예수께 우리의 마음을 드리며 조용히 무릎을 꿇고 경배 드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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