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 2주간 월요일(가해)
제목 : 내 죄 말고 우리의 죄, 그리고 용서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지칭한다는 이 속담이 알려주듯 누군가의 완고함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하여 공동체 전체에 해악을 끼칩니다. 이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으며, 그 당사자가 나일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 죄는 ‘저 사람의 죄’가 아니라 ‘우리 안에 내재된 죄’입니다. 게다가 내가 몰라서 그렇지 언젠가 우리도 그렇게 완고했던 적이 분명히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 사람의 잘못은 사실 우리의 잘못이기도 하고 이는 항상 연대적인 책임을 요구합니다. 한 사람이 잘못하면 우리 모두가 혼을 나던 어린 시절 어른들의 교육은 억울함을 동반했지만 내가 모여서 우리가 된다는 어린아이로서는 알 수 없었던 깊은 뜻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한편 오늘 복음은 용서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많은 사람이 용서하지 못하는 까닭은 자기가 용서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은 죄가 없는데, 해악을 끼친 저 사람을 용서하려니 배가 아픈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때 조건 없이 나를 용서해주시는 하느님을 떠올려야 합니다. 우리가 고해성사를 통해서 수많은 죄를 용서 받았는데 나가서 내가 용서받은 사실은 잊어버리고 저 사람이 내게 손해 끼친 것만 생각하고 있으니 용서라는 것이 당연히 어렵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가 자비로우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고 이야기하십니다. 이 말을 바꿔보면 아버지께서 너희 죄를 조건 없이 용서해주셨으니 너희도 조건 없이 용서하여라는 말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원수를 향해있으면 용서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있다면 한결 수월해질 것입니다.
용서(容恕)라는 한자를 자세히 살펴보면, 용(容)자는 그 모습이 사람이 온화하게 미소 짓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恕)자는 두 단어가 합성된 단어입니다. 즉 같을 여(如)+마음 심(心) 이 두 단어가 합쳐져서 이루어진 단어이지요. 풀어서 설명드리자면 상대방과 나의 마음이 같아져야 용서가 가능하다는 뜻이지요. 여기에서 마음이 같아진다는 것은 곧 서로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뜻으로 새겨들으셔도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으셨던 것도 우리들의 마음과 하나가 되셨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우리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일치를 이루며 화해를 이루는 삶이 될 수 있도록 하느님 아버지께 은총을 청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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