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 4주간 수요일(가해)
어쩌다가 냉담했던 신자를 만나게 되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한때는 레지오 마리애 활동도 열심히 하고 단체의 단체장도 맡는 등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활동했는데 어느 순간에 냉담자가 되었다며 자신이 냉담자가 될 줄은 꿈에도 돌랐다고 털어놓습니다. 또 냉담하는 일부 청년들의 부모 중에도 그와 비슷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복사 활동도 열심히 하고 주일학교 교사도 하면서 성당에만 살다시피 해서 염려를 했던 자녀가 이제는 가라고 등을 떠밀어도 성당에는 통 가려고 하지 않는다고 걱정을 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활동했던 사람이 왜 쉬는 신자가 되었을까요? 이유가 있겠지요.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는 남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내 일이 될 수도 있지요. 열심히 하는 교회 안의 활동이 오롯이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길이 될 수 있는 길을 오늘 독서 말씀을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열심했던 신자가 쉬는 신자로 변질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열심히 한 그 활동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열성적으로 하기는 했는데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욕망으로 했다는 것이지요. 신앙이 식은 사람들은 이렇게 모든 일에 우선하여 하느님의 뜻 안에서 활동하고 생활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욕망에 치우쳐 행동한 사람들입니다. 열심히 신앙 생활을 했지만 실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수준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이지요. 물론 처음부터 하느님을 알고 시작하는 신앙 생활은 극히 드문 일입니다. 처음에 신앙은 대체적으로 인간적인 것에서부터 출발을 하게 되지요. 성당 건물이 아름다워서, 또 차 마시고 쉬는 공간이 마음에 들어서, 혹은 청년 시절이라면 예쁜 여학생을 만날 수 있어서 등등 극히 사소한 것에서 출발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적인 것에서 점차 하느님께로 관심이 옮겨가게 되지요. 하지만 이렇게 승화가 안되고 그 상태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냉담할 수밖에 없습니다. 좋게 느꼈던 공간은 시들해지고 예쁜 여학생들은 어느 날 뿔뿔이 제 갈 길로 흩어져 갑니다. 그러면 성당에 다니는 의미가 없어지고 마는 것이지요.
출발은 인간적인 계기에서 비롯되었지만 거기에서 점점 하느님께로 나아가도록 노력을 했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적인 것에서 출발해서 인간적인 것으로 마무리되고 마는 안타까운 경우가 생기는 것이지요.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의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사도 바오로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33년경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목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과 만나게 되지요. 그렇게도 그리스도를 반대하고 그리스도 신자들을 박해하여 뿌리뽑으러 가던 그를 예수님께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큰 은총으로 변모시키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너무나도 놀라운 예수님의 은총에 즉시 하느님께로 믿음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지요.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노력합니다. 하지만 열렬한 유다교 신도이자 그리스도의 박해자였던 그에게 그 일은 여의치가 않았습니다. 유다인들은 개종한 그를 변절자로 낙인찍어 잡아죽이려고 하였고 그리스도 공동체는 아직 그의 믿음을 믿을 수 없어 거부했던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와 같이 초대교회의 기둥이었던 베드로 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 사도 또한 하느님의 은총을 많이 받았지요. 수제자로 뽑히고 으뜸 사도로서의 역할을 맡아 예수님의 사랑을 누구보다도 확실하게 받은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목숨을 살리려는 욕망 앞에서 한 순간 무너지고 말지요. 살고 싶은 인간적인 욕망에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비록 유혹에 무너졌지만 그는 곧 자신의 죄를 깨닫고 눈물로 회개하였으며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를 사랑으로 일으켜 세우시고 교회의 반석으로 우뚝 서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냉담의 원인이 인간적인 것에 머무르는데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단체장이 되고 교회의 중요 직책을 맡는 증 하느님의 큰 사랑을 받을 때가 우리의 신앙이 성숙되는 은총의 때입니다. 그런데 그 때 기도하지 않고 나의 욕망이나 의지, 흥미에 연연하며 움직인다면 그 은총은 오히려 받지 않은 것만도 못한 것이 되고 맙니다. 하느님의 뜻보다는 나의 욕구에 더 치우쳤기 때문이지요. 주일학교 교사를 열심히 하다가 그만 두게 되면 냉담하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또 단체장이나 사목위원 등 열심히 신앙생활 후에 쉬는 교우들을 우리는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요. 기도하지 않고 활동만 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로부터 은총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겸손하게 하느님 안에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신앙을 성숙시키고 공동체를 성장시키는 길임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는 오늘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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