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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7일 연중 제 9주간 수요일(가해)

작성자 : 김민호 작성일 : 2017-06-07 조회수 : 318

연중 제 9주간 수요일(가해)

 

제목 : 죽음 그 이후의 세계에 대한 믿음

사람들은 대개 일상생활을 하면서 죽음이라는 문제를 떠올리려 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자신의 죽음의 문제를 실존적으로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흔치 않습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가까운 가족이나 친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보게 되면 누구나 한번쯤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죽음 이후의 삶, 살아있는 우리들로서 인지적 차원의 지식은 있지만 체험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살아있는 우리 중에 그 어느 누구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께서는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파 사람들과 논쟁을 벌이십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형이 자손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의 대를 이어주어야 한다는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대를 이어주어야 한다는 형수취수혼제가 용납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그 제도를 들먹이며 칠 형제가 있었는데 첫째가 아내를 얻어 결혼하여 자식없이 죽어서 둘째가 형수를 아내로 맞았지만 그도 자식없이 죽고 셋째도 그러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여 그 일곱 형제가 모두 자식없이 죽고 마침내 그 여자도 죽었는데 부활 후 살아나면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난감한 질문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후의 부활의 삶은 현세의 삶이 단순한 연장이 아니라고 지적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다음에는 장가드는 일도 없고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처럼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누군가 죽게 되면 남은 가족들이 누구에게 종속되고 누구에게 재산을 물려줄 것인가가 아주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서는 모두가 하느님께만 속하기 때문에 세상과 완전히 다른 질서 속에서 살게 된다는 사실을 예수께서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어서 예수께서는 하느님은 죽은 자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느님임을 천명하십니다. 죽은 사람들의 문제는 죽은 사람들에게 맡기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일에 신경을 쓰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 오늘 복음에 나오는 사두가이파 사람처럼 일상에서 우리가 집착하고 있는 문제에 하느님을 끌어들이면서 그 문제를 하느님의 뜻을 빌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많은 이들이 기도할 때 하느님께 무엇인가를 청하는 청원기도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집안이 건강하게 해달라는 간구나 혹은 남편의 사업이나 승진을 위한 기도, 자식들의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기도, 등등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기도의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의 현세욕구를 채우기 위해 하느님을 이름을 빌리는 경우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하게 이야기하면 하느님을 이름을 빌어서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이라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삶 속에서 하느님을 체험하고 느끼며 살아가는 생활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겪는 일상의 삶 가운데 살아 계십니다. 우리가 행하는 하루 하루의 일과 속에서 함께 하시고 이웃들의 고통 가운데 현존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신앙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이름을 빌려 현세의 욕망을 채우는 사람이 아니라 참으로 그분의 뜻에 온전히 내맡기며 살아갈 수 있는 신앙인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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