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16주일(가해)
제목 : 밀과 가라지
옛날 시골에는 천수답이 많았던 관계로 동네 사람끼리 물싸움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개울에서 내려오는 물은 적은데 위에서 몽땅 쓰고 나면 아래에서는 모도 심지 못할 형편이어서 서로가 옥신각신하다가 급기야 치고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서로 원수가 됩니다. 물싸움을 하다가 상대방의 논둑을 뚫고 물을 몽땅 흘려보내는 보복을 하여 경찰이 오는 소동도 벌어지곤 합니다. 이런 것이 우리나라의 원수 갚는 형태였다면 약 2000년 전의 이스라엘과 이집트 지방에서는 원수진 사람의 밭에 가라지를 몰래 뿌려놓는 정말 고약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후텁지근한 열대성 기후에다가 우기인지라 비가 알맞게 내리면 밀과 가라지는 매일이 다르게 자라납니다. 밀과 가라지는 너무나 비슷하여 농부들조차도 구별이 어려웠으니 보통 사람들이 구별하기란 거의 불가능하였습니다. 결국 농부들은 밀이나 가라지에게 똑같이 거름을 주고 김을 매주어야 했습니다. 판별의 날은 그들을 팼을 때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논에서 자라는 ‘피’라는 식물이 있는데 이 또한 벼와 너무나 흡사하여 구별하기 힘이 듭니다. 결국 다 자란 다음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나면 명확히 드러납니다. 사람들인들 다르겠습니까? 도둑과 보통 사람이 어디 구별됩니까? 오히려 도둑이 더 상판이 그럴싸하게 펑퍼짐하고 복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가라지를 팼을 때 비로소 종은 알아보고 주인에게 식식거리며 달려가서 아룁니다. ‘주인님, 주인님, 큰일입니다. 어인 일로 밭에 가라지가 그리도 많습니까? 어서 뽑아야겠습니다. 명령만 내리십시오. 한시가 급합니다.’
일꾼은 화가 나서 어서 빨리 가라지를 뽑아야겠다는 생각만 합니다. 그에게는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습니다. 일꾼은 하나만 생각하고 둘은 생각하지 못했으나 주인은 둘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만사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가라지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밀에 중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가라지는 밀에 엉겨 붙어있기에 가라지를 잘못 뽑다가는 밀이 뽑힐 가능성이 많았습니다. 그걸 걱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가라지가 나쁜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밀이 하나라도 다치면 안 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종으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종은 얼마간의 밀이 훼손되더라도 가라지를 박살내면 후련할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세상은 밀과 가라지가 공존하는 것처럼 선과 악이 공존합니다. 선인과 악인이 공존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도 선인과 악인은 공존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너무 성급하게 판단합니다. 일꾼이 주인에게 조르듯이 그렇게 조릅니다. ‘주님, 어찌하여 저 못된 놈들을 그냥 두십니까? 어서 악인들이 끝장나게 하십시오.’라고 투덜거리기도 합니다. 마치 가라지가 양분을 다 섭취하여 정작 밀은 비실비실 말라가고 있다는 듯이, 악인들이 이 세상에서도 호의호식하는 바람에 의인은 고난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는 푸념을 늘어놓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대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악인을 제거하려다가는 선인들이 다친다. 선인들도 악인들과 무관할 수는 없다. 그들의 친척도 되고 친구도 되고 이웃도 된다. 그러니 마지막 날까지 기다리자. 그때는 분명히 판가름 날 것이다.’ 그때는 따로따로 거둘 수 있기 때문에 뿌리를 다칠 필요도 없어진다. 뿌리가 다친들 어떠하랴! 알곡만 거두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서두르는 병이 있습니다. ‘빨리, 빨리!’
한국말 중에 외국인이 제일 잘 아는 말일 것입니다. ‘인내, 기다림’ 이 단어들은 우리 민족에게 화두처럼 중요하게 여겨지는 말입니다.
가라지는 위선의 상징입니다. 가라지는 기생충처럼 밀에 붙어서 살아갑니다. 이 세상도 위선자가 넘쳐납니다. 가라지 같은 인생이 밀과 같은 인생으로 바뀔 수는 없을까요? 오늘날 종의 변화가 가능하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감히 인간의 힘으로 종의 변화가 가능하다면 하물며 하느님께서는 가라지에서 밀로의 변화를 얼마든지 가능하게 하실 것입니다. 나는 가라지는 아닌지? 순수한 가라지는 많지 않겠지만 가라지에 사로잡힌 상태는 아닌지를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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