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17주간 화요일(가해)
오늘 들은 복음 바로 전의 말씀 내용은 이렇습니다.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어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하는 일이 다 그렇다는 소립니다.
내 안에 있는 악, 내 안에 있는 선. 나는 선하다고 하면서도 악을 부정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주로 보면 그렇습니다. 나는 비록 완벽하진 않지만, 주로 나는 좋은 사람 쪽입니다. 문제를 지적하고 식별에 능하며 옳고 그름에 대한 명확한 인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주로 문제가 없습니다.
나보다 훨씬 많은 문제를 가지고 사는 저 인간 때문에 내가 약간의 문제를 지닐 뿐이지요. 대부분 그렇습니다.
정작 자기에 대해서는 궁하면서도, 타인에 대한 앎은 자신하지요. 제 생각엔 그렇습니다. 진짜를 알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세월이 들어가야 진짜가 나옵니다.
잘, 많이 알고 싶진 않습니다. 함께 세월을 감당하는 사람...이 대단하고, 판단 잘하고, 지적 잘하고, 옳고 그름에 대하여 많이 아는 것보다, <그런 그>와 함께 있는 사람...이 더 소중합니다.
밀과 가라지. 주제대로 갈 것입니다. 종자가 달라지는 것은 아닐테니까요.
가라지는 태워질 것이며, 밀은 곳간에 거두어들일 것입니다. 굳이 복음을 빌자면, ‘울면서 이를 갈 것’이며, ‘하늘에서 해처럼 빛날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악. 그리고 내 안에 있는 선. 감히 누구를 죄인이라 단죄하는 입술. 나는 의롭다 내세우는 무지. 이 모든 것이 뒤섞인 아수라판이라 할지라도, 그렇습니다. 세월이 지나면 더 선명하게 보일 것입니다.
“용서는 하시되, 벌을 거두지는 않는 하느님”(탈출 34,7)의 신비가 세월 흐를수록 선명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무엇이 용서이고 무엇이 벌인지, 무엇이 선이고 또 무엇이 악인지를 잘 식별할 수 있는 은총을 주님께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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