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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3일 연중 제 22주일(가해)

작성자 : 김민호 작성일 : 2017-09-04 조회수 : 331

연중 제 22주일(가해)

 

텍사스의 돈 많은 목장주가 세계 여행을 하면서 영국의 버킹검 궁전 앞에까지 왔습니다. 화려한 궁전을 밖에서 보면서 그는 안으로 들어가 실내의 모습도 보고 싶었지요. 그래서 궁전을 지키고 있는 병사에게 1,000 달러짜리 지폐를 주면서 이 정도면 들어가겠지?”하고 말합니다. 그리고 떳떳하게 안으로 들어가려고 해요. 하지만 병사는 그를 가로 막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을 주어야 왕궁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 초청장을 주셔야 왕궁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 초청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1 달러도 없어도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지만, 당신처럼 초청장이 없는 사람은 1,000달러 아니 10,000달러를 가져와도 왕궁으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이 돈 많은 목장주인은 돈이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하지만 돈으로 될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있는 것이지요. 하느님 나라도 그렇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데 이 세상에서 벌어들인 재화가 필요할까요? 그래서 부자는 하느님 나라도 쉽게 들어갈까요?

오히려 부자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만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힘들다고 말씀하셨지요. 다시 말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데는 현세의 재물이 내게 더 큰 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이 세상 것을 너무나 소중하게 여기고 있으며, 이 세상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을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을 하고, 그 판단에서 벗어날 때에는 반대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펄쩍 뛰면서 주님, 안 됩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라고 반대의 의견을 내놓습니다. 사실 베드로의 이 모습은 인간적인 기준으로 볼 때, 너무나 당연한 모습이 아닐까 싶어요. 사랑하고 존경하는 스승이 고난을 당하고 결국은 죽임까지 당한다고 하니,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가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고난과 죽음을 이렇게 미리 알 수 있다면, 미리 피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반대의 의견을 내놓는 베드로에게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자기를 생각하고 한 말도 아닌데, 스승님을 생각했고 스승님이 걱정되어서 한 말인데, 어떻게 사탄이라고 표현하실 수 있을까요? 더군다나 오늘 복음의 바로 직전(지난 주 복음)에는 베드로라는 이름까지 지어주시면서, 교회의 반석으로 삼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180도 바뀔 수가 있다니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한다면,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라 할지라도 사탄이라는 호칭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얼마나 자주 주님께 사탄이라는 호칭을 듣게 되는지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이 세상 것에만 초점을 맞추어서 생각하고 판단함으로써 점점 주님께 멀어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예수님을 따르는데 그토록 열심했던 베드로도 사탄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이 사탄이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야 할지를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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