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통고 기념일(가해)
오늘은 성모님의 고통을 묵상하는 ‘성모 통고 기념일’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사도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하고, 어머니에게 요한을 아들로 여기시라’고 유언처럼 말씀하시는 정말 가슴 아픈 장면을 요한 복음사가와 루카 복음사가는 정리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오늘을 ‘성모 칠고축일(聖母 七苦祝日)’이라고 했습니다. 축일(祝日)이라고 하면 흔히 축하(祝賀)하고 잔치를 베푸는 경사스러운 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은 기념일로 바꿨지만 ‘축(祝)’자는 본래 ‘빌다’, ‘기도하다’, ‘묵상하다’라는 의미랍니다. 그래서 축일이라면 ‘축하하는 날’이라는 뜻보다는 ‘기도하고 묵상하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신부님들의 영명축일도 ‘영명을 축하하는 날’이라는 뜻보다는 ‘신부님이 성인신부 되기를 기도하고 묵상하는 날’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답니다. 그런 이유로 오늘 ‘성모 통고 축일’(9월 15일)은 성모님의 모든 고통을 묵상하고 우리의 삶을 새롭게 바꾸어 참된 크리스천으로서의 삶을 살고자 기도하는 날이랍니다.
우리가 성모님의 고통을 묵상할 때 흔히 일곱 가지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성모님의 고통과 즐거움은 모두 예수님의 고통이며, 처녀의 몸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고, 살 어름판과 같은 그 시대에 예수님께서 겪으셨던 모든 고통을 당신의 고통과 아픔으로 간직하신 성모님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성모님의 일곱 가지 고통은 항상 상상할 수밖에 없는 엄청난 것이랍니다.
1. 이집트로 피난하심(마태 2, 14)
2. 시메온의 예언(루카 2, 35)
3. 예수님을 잃어버림(루카 2, 48)
4. 예수님께서 골고타 갈바리아로 오르심(요한 19, 17)
5.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심(요한 19, 25)
6.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림(요한 19, 40)
7. 예수님을 무덤에 묻음(요한 19, 42)
어찌 성모님의 고통을 이렇게 일곱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그 아픔을 짐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모님만이 그 깊은 아픔을 간직하셨고 우리는 다만 아주 작은 경험과 느낌으로 체험할 뿐입니다. 우리와 다른 것이 있다면 성모님은 예수님의 어머니이시고, 세상 구원의 협력자로서 그 고통을 감수하신 것입니다. 구세주의 어머니만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성모님의 고통을 단순하게 느끼기 위해 축일을 제정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삶은 피하고 싶은 고통의 연속일 수 있습니다. 나도 매일이 고통스럽고, 빨리 죽어서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한 적이 많이 있었습니다. 괴롭고 힘들고 서럽고, 육체적으로 병들고 정신적으로 방황할 때 성모님을 생각했습니다.
성모님도 우리와 같아서 정말 형극(荊棘)의 삶을 사셨습니다. 예리한 창에 가슴을 찔려 받는 고통 중에서 매일을 사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통을 고스란히 가슴에 안고 사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느끼는 그런 고통은 뒤로 밀어두고도 말입니다.
우리도 고통 중에 있을 때, 성모님께 의지하고, 성모님께서 주 하느님께 기도해 주시기를 끊임없이 청해야 하겠습니다. 전구하심을 간절히 바라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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