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29주간 금요일(가해)
복음 : 루카 12,54-59
날씨는 예측할 줄 알면서 왜 시대의 표징은 알아보지 못하느냐고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꾸짖으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물질적인, 또는 세속적인 이익은 구할 줄 알면서도 영적인 이익은 구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세속의 일에 대해서는 잘 알면서도 영적인 일에 대해서는 알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꾸중입니다.
아무리 재테크를 잘하면 뭐합니까?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날씨 예측은 왜 합니까? 불행을 예방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태풍의 진로를 예측하고 미리 대비하는 것은 모두에게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능력은 아직 태풍 자체를 막지도 못하고 진로를 바꾸지도 못합니다. 겨우 진로를 미리 예측할 수 있는 정도의 능력으로 교만해지지 말아야 합니다.
물난리를 겪을 때마다 늘 듣게 되는 말이 “이것은 천재가 아니라 인재다.” 라는 말입니다.
첨단 시스템만 믿고 교만해지는 것은 바벨탑을 쌓는 어리석음입니다. 바벨탑이 무너진 것도 천재가 아니라 인재였습니다.
구약성경의 내용을 보면 바벨탑은 무너진 것이 아니라 쌓다가 중간에 그만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의 말이 달라져서 공사가 중단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은 종말보다는 개인의 운명입니다. 사람들은 일기 예보를 궁금해 하듯이 자신의 미래를 궁금해 합니다. 그래서 미신을 믿고 점을 칩니다. 미신을 믿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람의 미래는, 또는 운명은 정해져 있다는 사고방식입니다. 정해져 있지 않다면 미리 알 수 없습니다. 정해져 있다고 믿기 때문에 미리 알기 위해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태도 자체가 모순입니다. 정해져 있다는 것은 바꿀 수 없다는 뜻이고, 바꿀 수 없다면 미리 알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바꿀 수 있다면 정해져 있지 않다는 뜻이고, 정해져 있지 않다면 미리 알 수 없습니다. 잘만 하면 과거는 알아맞힐 수 있습니다. 그건 누구라도 할 수 있습니다. 조금만 노력하면 현재의 상태도 꿰뚫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능력은 거기까지입니다. 그래도 미래를 예언하고, 예언한 대로 되는 일이 있지 않으냐? 라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긴 하지만, 그건 확률의 문제입니다.
미래를 알고 싶다면 과거와 현재를 알면 됩니다. 자기의 미래의 운명을 알고 싶다면 자기가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반성하면 됩니다.
야곱과 에사우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에사우가 야곱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야곱이 도망쳤습니다. 세월이 흘러 다시 돌아왔을 때에 야곱은 에사우가 자기를 죽일까봐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에사우는 변해 있었습니다. 야곱은 아주 오래 잘 살았습니다.
자신의 미래를 바꾸고 싶다면 현재 상태를 바꾸면 됩니다. 구원을 받고 싶다면 회개하면 됩니다.
하느님의 심판은 하느님께서 선고를 내리시기 전에 우리 자신이 결정합니다. 지금의 태도가(사는 모습이) 그대로 심판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경고하십니다.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재판관에게 갈 때, 도중에 그와 합의를 보도록 힘써라.”
지금 당장 회개하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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