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전교주일) - 가해
제목 : 마음 편안한 사랑
복음은 우리들에게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권고합니다. 그러나 인간인지라 살면서 하느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했고, 이웃을 따뜻하게 대하지 못했다고 미사 중 기도 중에 가슴 아파합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이웃이 아프면 내 몸도 아프던가요? 아닙니다. 이웃집 아이는 대학에 합격하고 내 자식은 재수하고도 떨어졌는데 과연 이웃집 아이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말을 할 수 있었던가요? 아닙니다.
신앙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 종일 하느님만을 생각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무슨 일이 생기든지 간에 늘 하느님께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이 가능할까요? 남편이 실직당하고, 어린 자식이 교통사고를 당하고, 큰 아들이 집을 나갔는데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요?
다른 각도에서 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자식이 어렵게 구해다 준 놀이기구나 학용품을 다른 아이들에게 다 주고 다닌다면 과연 부모로써 잘했다고 할 수 있는지요? 생활이 어려운 친구를 위해 밥도 안 먹고 침울한 표정을 짓는다면 부모 입장에서 마음 편안하겠는지요?
내 자식이 공부는 하지 않고 하루 종일 하느님만을 생각하고 산다면, 공부는 맨 날 꼴찌하면서도, 주변 친구들에게 항상 좋은 아이로 비춰 손해만 보고, 주일학교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신앙이 인생의 목표라고 생각하는 그런 자식을 보고 과연 내 자식이 자랑스럽다고 말할 수 있는 부모가 있겠습니까? 대부분의 부모는 마음 편치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지키지도 못할 계명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인생의 이상적인 목표가 무엇인지를 알려주셨을 뿐입니다. 사람은 자기만족을 하면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마음이 불만스러우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자기만족에 빠지면 자기도취라는 또 다른 부작용이 생깁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을 인생의 목표로 삼되 완전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버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한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히말라야 산맥에서 제일 높은 천년설은 멀리서 보면 아름답지만 꼭대기까지 올라 갈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나머지는 세상살이에 몰두하다가 가끔 봉우리를 보면서 위로를 받거나 아니면 절반 정도 높이까지 올라가서 경치를 불 수 있을 뿐입니다.
성인들은 하느님이 선택한 분입니다. 성인이 될 마음을 가질 수 있을지언정 굳이 성인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만 성실하게 열심히 살기만 하여도 주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과 관심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마음 편안하게 복음을 접합시다. ‘하느님과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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