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 2주일(나해)
제목 : 변모와 두려움
사순절에는 변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변한다는 것은 죽을 만큼 힘들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백세에 이사악이라는 외아들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시험해보시려고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외아들을 제단위에 올려놓고 손을 뻗쳐 칼을 잡고 죽이려 하는 순간 아버지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자기 생명보다 더 소중한 아들을 봉헌하는 아픔을 그 누가 알 수 있을까요? 아브라함은 그 아픔을 겪었기에 모든 민족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나 자신을 걸고 맹세한다. 네가 너의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네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 너의 후손은 원수들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다. 네가 나에게 순종하였으니,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너의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창세기 22,16-18)
그런데 하느님의 처지가 아브라함의 처지와 똑같았습니다. 그분은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당신 외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변한 모습이었고 그분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거룩한 변모는 아픔을 전제로 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엘리야와 모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을까요? 아마도 수난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산에서 내려오실 때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신 것입니다.
부활이 죽음 뒤에 오고, 변모는 고통 뒤에 오기 때문입니다.
고통 때문에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변하기 위해서는 숱한 고통들을 이겨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통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는가?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우리 편이신데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는가? 우리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이 계시는데 누가 우리들을 단죄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나에게 주어지는 고통들을 영광의 선물로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변모하여 그분의 사랑받는 아들, 그분 마음에 드는 아들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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