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 3주간 목요일(나해)
제목 : 나 다운게 뭔데?
TV 드라마를 보면 아주 흔해빠진 대사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부부나 연인끼리 싸우며 흔히 등장하지요, “당신답지 않게 왜 그래?” 하고 남자가 짜증을 내면, 눈물을 흘리던 여자가 거의 대부분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나 답지 않게? 그래, 나 다운게 뭔데?” 니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어찌 알겠습니까?
나다운 거,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내 속엔 정말로 내가 너무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다운 것도 모르면서 내가 되려고 하는 것도 억지 춘향이요, 무엇을 해야 내가 행복한지도 모르면서 다른 사람 따라 이것저것 기웃거리는 일도 피곤하기만 합니다.
그것 “다운” 것이 아름답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고, 어른이 어른답고, 아내가 아내답고, 남편이 남편다운 것이 아름답습니다만, 그러나 그 ‘답다’는 것이 그 사람 입장에서가 아니라 내 편에서 그 ‘다움’을 규정짓고 강요하기 시작하면 사는 일이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그 사람이 원하는 ‘답다’는 것이 실상 내 안에 있는 수만 가지 모습 중에 하나일 뿐인데, 자꾸만 그런 눈으로 그에 대하여 기대를 하고 요구를 하면 서로가 별로 행복해지지가 않게 됩니다. 원래 있는 나의 모습, 애초 주셨던 나의 귀함을 다시금 회복시키는 것, 어쩌면 그것이 하느님의 일이자 하느님의 시선인지도 모릅니다.
당신께서는 애시당초 가장 좋은 모습만을 나에게 심어주셨습니다. 참 좋은 마음, 참 귀한 마음, 참 소중한 생명으로 나를 가득 채우셨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갈수록 나는 그 좋은 것들을 하나 둘 잃어가고 대신 엉뚱한 것들로 그 자리를 메우느라 돈과 시간을 다 써버립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어쩌면 그게 아닌데, 참으로 중요한 일, 필요한 일은 하느님께서 애초 나에게 주셨던 그 아름다움을 잘 회복시키는 일인데도 그것은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어 행하셨던 모든 일들도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우리가 잃어버린 하느님의 모습을 회복시키신 것, 뿐이었습니다. 예수께서 하셨던 모든 기적이 그랬고 그분의 모든 말씀들이 그랬습니다. 그분은 마치 우리가 잃어버린 아버지 하느님을 복원시키기 위해 목숨을 거신 분처럼 행동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모습은 여전히 하느님답지 않은 모습으로 가득 차 있던 사람들에게 반대의 표적이 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악의 방식에 쩔어 있고 세상의 방식으로만 답습하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거대한 걸림돌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말 못하던 자를 말하게 하시고, 못 보던 자를 보게 하십니다. 갇힌 자를 해방시키시고 묶인 이들을 풀어주십니다. 그냥 대충 이렇게 살라고 단 한 번도 그리 말씀하시지 않으십니다. 풀이 죽고 절망하고 식어빠진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 원래 그런 분이 아니시라며 그 사람 안에 죽어 있던 하느님을 다시 발견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분이 가시는 곳마다 생기가 일고, 그분의 손길마다 생명이 되살아났습니다. 살 맛 없던 인생이 살맛을 찾고, 자기가 누군지도 몰랐던 사람들이 자기를 찾았습니다. 마귀는 죽이지만 하느님은 살립니다. 마귀는 흩어버리지만 하느님은 모으십니다. 마귀는 쥐지만 하느님은 폅니다. 마귀는 자기만 살면 그만이지만 하느님은 남이 살아야 그만이십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다운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목숨입니다. 신앙인다운 거, 하느님의 자녀다운 거, 믿는 사람다운 거, 모두가 예수님 속에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답게 살면, 그 때 비로소, 내가 나 다운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깨우치게 될 것입니다.
다른 엉뚱한 것들이 나다운 것일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똑같이 예수님답게 살면 됩니다. 그 속에서만이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드러나니까 말입니다.
나를 모르면 하느님도 모르고 하느님을 모르면 나도 모르게 됩니다. 하느님 없이 설명될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알아야 나도 알고 또 내 살길도 열리게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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