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조용하고 신사처럼 매너가 늘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형제님이 계십니다. 화도 잘 내지 않고 어떤 경우에도 이해를 해주는 멋진 분이지요. 따라서 사람들에게 늘 좋은 인상을 남기셨고 많은 이들이 이 분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운전 중에 자기 차 앞에서 왔다 갔다 하며 위험하게 운전하는 차를 만난 것입니다. 바로 이 순간 이제까지 볼 수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글쎄 크게 화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모습을 매스컴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엄마가 차를 번쩍 들어 올렸다는 이야기, 중병으로 도저히 치유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초인적인 의지력을 발휘해서 이겨냈다는 이야기 등을 말이지요. 즉, 평소와는 다른 모습, 이제까지 하지 못했던 행동을 하는 것이 바로 자신을 뛰어넘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형제님 역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 것이 아닐까 싶네요. 사실 그냥 웃고 넘기면 되는데 순간의 감정을 이기지 못해서 쓸데없는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초인적인 힘을 사소한 곳에서 발휘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정말로 중요한 곳에서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주님의 뜻인 사랑을 실천하는데 초인적인 힘을 사용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 모습이야 말로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간절하게 원하는 모습이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세관에 앉아 있는 마태오를 “나를 따라라.”라고 부르십니다. 당시에 세리는 큰 죄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같은 민족의 사람들에게 세금을 걷어서 로마에 바치는 사람이어서 하느님으로부터 특별한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 사람을 괴롭히는 죄인이고, 또한 그들이 만지는 돈에는 황제의 얼굴이 그려져 있기 때문에 늘 우상숭배에 빠져있는 큰 죄인이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죄인을 부르시는 예수님을 당시의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앞서 말씀드렸던 사랑이라는 초인적인 힘을 하느님을 위해 쓸 수 있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즉,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은 지금 모습이 그대로 일 것이라고 생각했고, 주님께서는 분명히 변화될 수 있음을 아신 것입니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의로운 사람은 어떻게 변화될 수 있을까요? 의로운 사람은 지금 상태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죄인은 어떻게 변화될까요?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죄인인 우리 모두가 하느님 앞에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이 땅에 오셨고 계속해서 당신께로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우리 각자를 똑같이 부르십니다. 이제까지 가지고 있었던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라고 부르십니다. 쓸데없는데 초인적인 힘을 발휘할 것이 아니라, 사랑을 위해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부르심에 제대로 응답하는 길입니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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