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고 쉽지만 별 의미 없는 삶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어렵고 힘들지만 의미 있는 삶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대부분 아무리 어렵고 힘들다고 해도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길이 더 행복할 것이라는데 동의를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우리의 선택은 어떠했을까요? 대부분이 편하고 쉬운 삶을 선택합니다. 고통이나 시련은 너무나 커다란 짐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요.
제가 인천교구 성소국장으로 있을 때 했던 예비신학생 면담이 생각납니다. 면담 중에 왜 신부님이 되고 싶은 지를 물었는데, 한 친구가 “제가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고요, 신부로 사는 것이 제일 편한 것 같아서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학생은 “어렵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신부님이 되고 싶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한 명은 편한 삶을 위해서 사제의 길을 가겠다고 했고, 다른 한 명은 어렵고 힘들지만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위해서 사제의 길을 가겠다는 것입니다. 이 둘 중에 누가 신학교에 들어갔을까요? 편한 삶이 아닌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던 학생이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성소에서만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 안에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편하고 쉬운 것만 쫓는 사람은 약간의 힘듦에도 쉽게 포기하고 절망에 빠집니다. 그러나 힘들어도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삶을 쫓는 사람은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스스로가 선택한 길이기에 이를 이겨내면서 행복을 발견합니다.
주님께서는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 지역에서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이 지역은 예수님 제자들의 고향으로 주 활동 무대였습니다. 이렇게 많은 기적을 행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 모두가 회개해서 주님 사랑의 품으로 오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쉽고 편안하지만 의미 없는 삶이 아닌, 어렵고 힘들어도 의미 있는 삶을 살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지역의 사람들은 오히려 주님의 기적을 당연히 누려야 할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주님만이 있으면 쉽고 편하게 살 것으로 생각했지요. 그래서 주님을 자신들의 왕으로 모시려는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당신의 뜻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에서 주님께서는 화를 내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을 향해서 주님께서는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요? 주님의 뜻을 받아들여서 어렵고 힘들어도 의미 있는 삶이라 할 수 있는 사랑의 삶을 살아간다면 주님께서는 더 큰 은총과 사랑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약간의 힘듦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계속해서 기적을 보여 달라면서 불평불만을 주님께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편하고 쉬운 삶이 무조건 좋은 삶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께서 크게 화를 내실 수 있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어렵고 힘들어도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서 철저히 주님의 뜻을 실천해 나가는 의미 있는 삶이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때 주님께서 주시는 행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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