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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22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07-22 조회수 : 287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기대감을 갖게 됩니다. 자신이 그 사람에게 특별했으면 하고, 나의 불완전한 면을 채워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런데 이런 기대를 채워주는 상대방은 그리 많지가 않지요. 그 결과 기대가 실망이 되고, 실망한 만큼 미움과 원망을 가득 갖게 됩니다. 이렇게 내게 상처를 주는 사람은 주로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내 자신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기대감 때문은 아닐까요? 

원망에서 나오는 “어떻게 내게 그럴 수 있어?”라는 말들은 기대감을 잃었을 때 나오는 목소리입니다. 이는 모든 것을 내어주었다라고 생각하는 자녀들과의 관계에서도 비슷하게 나옵니다. 부모 뜻대로 살지 않고 오히려 부모의 뜻에 반대로 살아가면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그럴 수 있어?”라고 말하지요. 이 역시 기대감 때문입니다. 입으로는 사랑을 말하지만 욕심이 담긴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것을 강요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냥 상대방을 내 마음대로 휘두르려는 이기적인 욕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는 주님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내 뜻대로 행하시길 바라면서 계속 청원기도를 바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것이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일까요? 욕심이 들어가 있는 데에는 사랑이라 할 수 없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가능합니다. 있는 그대로 상대방을 아무 조건 없이 받아들일 수만 있으면 우리는 충분히 사랑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이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해주시고 또한 병자를 고쳐주고 허약한 사람을 치유해주셨습니다.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여주셨던 예수님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어느 정도였는지 복음은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다.”(마르 6,31)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너무 힘들고 지치면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사라지는 것이 보통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힘든 상황에서도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피하지 않고 더 많은 가르침을 주십니다(마르 6,34 참조). 조금도 쉬지 못하게 다가오는 사람들, 더군다나 이렇게 열광적으로 자신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반대할 것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을 받아들이고 나눠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사랑 때문입니다. 이 사랑에는 자신이 사랑한 만큼 상대방도 사랑을 줘야한다는 기대감이 없습니다. 자신을 반대하고 또 당신 수난의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사실까지도 그대로 인정하는 조건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잃어버리는 양이 하나도 없는(예레 23,4) 단 한 명도 구원의 길에서 제외시키지 않는 사랑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레미야 예언자가 예언하여 말씀하신 주님의 공정이고 정의였습니다(예레 23,5 참조). 

사도 바오로는 이 사랑의 예수님을 통해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피로 하느님과 가까워졌다고 말씀하십니다(에페 2,13 참조).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을 닮아서 주님의 길을 따를 수 있도록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욕심이 가득한 나의 기대감을 다른 이들에게 채우려는 모습에서 벗어나, 이제는 주님의 모습처럼 내 이웃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길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다고 말씀하십니다(마르 6,34 참조). 바로 사랑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서는 사람들이 적기 때문입니다. 저마다 자신의 기대만을 내 새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서 아픔과 상처를 겪으면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바로 이들에게 사랑으로 다가오는 착한 목자의 모습을 우리 역시 따라야 한다면서 주님께서 직접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아무 조건 없이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는 사랑의 삶이 필요합니다. 이 삶이 주님의 구원 사업에 기쁘게 동참하는 진정한 정의가 실현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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