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이 말의 속뜻은 ‘나는 절대로 이해하지 않겠다.’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상대방이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면서 이런 말을 하지만, 사실 어떤 마음을 품느냐에 따라서 이해하지 못할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갓난아기의 행동이나 말을 이해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무 때나 대소변을 보고, 별 것도 아닌 것에 툭하면 울어 재끼는 모습,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잘 걷지도 못한다고 해서 갓난아기에게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자기를 이해해달라고 정중하게 요청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오히려 웃으면서 갓난아기를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즉, 사랑만 있다면 이해하지 못할 것은 하나도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누군가에 대해 이해하기 힘들 때, 먼저 사랑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그 어떤 말과 행동도 이해할 수가 없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율법학자와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늘 적대적인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나쁜 말과 올바르지 않은 행동을 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같이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님을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표징으로 당신의 말씀을 뒷받침하지 못한다면 그분께서 하시는 모든 말씀이 거짓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표징을 보여 달라고 청했던 것입니다.
믿음을 통해서가 아니라 표징의 증거를 보고서야 하느님의 아드님을 받아들이겠다는 이들의 마음은 절대로 채워질 수가 없습니다. 이미 사랑의 마음을 버리고 부정적인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주님의 말과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이들 모두가 깜짝 놀랄 수 있는 표징을 보여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하시지요. 그들의 마음에 사랑의 마음이 없다면 그리고 이 마음을 통해 갖게 되는 주님께 대한 믿음이 없다면 어떤 표징도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 이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요? 여전히 계속해서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라고 말하고 있다면, 우리 곁에 다가오시는 주님도 이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이웃 안에서도 그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이 세상의 기준으로 이해하려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주님의 기준으로 사랑하려는 지혜로움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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