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순례는 새벽 5시에 출발하면서 시작했습니다. 전날에 계획했던 일정을 다 마치지 못해서 오늘은 그 부족분까지 채우려고 했지요. 그러나 결과는 뜻하지 않은 산행으로 일정을 다 마치지 못했습니다. 3.5Km를 올라가야 성지가 나오는 곳이 있더군요. 사실 이 성지를 담당하는 성당의 사무장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부님, 이렇게 더운데 그 성지에 가시려고요? 성지까지 갔다 오는데 3시간이 걸려요. 사무실에 그 성지 스탬프가 있으니 그냥 찍어드릴게요.”
종종 다리가 불편하신 분들은 그곳까지 갈 수가 없기 때문에 사무실에서 그냥 찍어주기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큰 맘 먹고 시작한 성지순례인데 어떻게 그런 편법을 쓸 수가 있겠습니까? 저는 자신 있는 목소리로 “신자분들도 가는 곳인데 저도 당연히 가봐야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성지에 오르는 입구에 도착했지만 주차할 곳이 없어서 5,000원의 주차비를 지불하고서 차를 주차했습니다. 그리고 산을 오르는데, 계속해서 오르막길입니다. 후회가 밀려옵니다. 그냥 사무장님 말씀처럼 스탬프 찍고서 더 많은 성지를 다녀오는 것이 더 나을 것만 같았습니다. 햇볕은 너무 뜨겁고 숨이 턱에 찹니다. 땀은 비 오듯이 쏟아집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그 성지에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너무 힘을 쏟아서 완전히 녹초가 되었지만, 성지에서 느낀 것은 더 많았습니다. 이렇게 산골까지 신앙생활을 위해 들어온 우리 선조들을 떠올릴 수가 있었고, 이 길을 얼마나 많이 왔다 갔다 하셨을까 생각하니 편하고 쉬운 것만을 선택하려고 했던 제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가라지의 비유 말씀을 하십니다. 원수가 가라지를 밀 가운데에 뿌려서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게 된 것이지요. 여기서 종들은 쉬운 방법을 선택합니다. 수학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가라지를 뽑아내자고 합니다. 문제는 가라지와 밀이 처음에는 비슷해서 실수로 밀을 가라지인 줄 알고 뽑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인은 쉬운 방법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수확 때까지 기다렸다가 먼저 가라지를 일일이 뽑아낸 뒤에 좋은 밀을 거두겠다는 것입니다.
쉽고 편한 길만을 쫓다보면 유혹에 쉽게 넘어가고 맙니다. 그러나 어렵고 힘든 길을 피하지 않고 쫓다보면 어떤 유혹도 거뜬하게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주님께서는 우리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분이시지요. 마지막 수확 때까지 우리를 기다려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랑이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 날에 분명히 큰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제 성지순례를 마칩니다. 지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주말에는 사람들도 많아서 성지순례 하기에 불편함이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천천히 몇 개의 성지를 돌면서 올라가도록 하겠습니다. 계획한 일정을 다 마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참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던 은혜로운 순간이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의 기도와 염려 덕분인가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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