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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8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08-08 조회수 : 316

책을 읽다가 재미있는 글을 하나 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짝에 대해 적은 글이었는데, 그 내용을 대충 이렇습니다. 

세계 인구가 74억이라면 나의 이성 짝은 37억으로 줄어듭니다. 이중에서 유아, 미취학 아동, 노인, 그리고 결혼한 사람들을 빼면 인구는 더욱 더 확 줄어들고 맙니다. 여기에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 외모나 성격, 종교 등의 차이를 보이는 사람 등을 빼고 나면 결국 내게 딱 맞는 짝은 하나도 없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글을 쓴 작가의 말을 정리하면 곧, ‘완벽한 짝이란 이 세상에 없다.’라는 것입니다. 대신 둘이 하나를 이루면서 완벽한 짝으로 나아갈 뿐이지 결코 완벽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자기 자신도 완벽하지 못하면서 상대방은 내게 완벽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완벽하지 못한 내 자신을 인정하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상대방에게서 나의 부족한 면을 채울 수 있는 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겸손은 상대방을 향한 믿음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믿음이 없으면 모든 것이 불만족스러우면서 상대방 앞에 겸손한 모습을 갖출 수가 없지요.

이는 주님과 우리의 관계 안에서도 똑같이 작용합니다. 자신의 부족함은 전혀 인정하지 않으면서 주님께서 당연히 다 해줘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곤 합니다. 그래서 ‘주님, 이것을 해결해주시지 않으면 이제 당신을 믿지 않겠습니다.’ 등의 공갈과 협박의 기도를 바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떤 가나안 부인이 예수님 앞에 나와서 마귀가 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소리 지릅니다. 그런데 이 청을 바로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사람을 차별하는 듯한 말씀을 하시지요. 이때 이 가나안 여인은 어떻게 했습니까? 사람을 무시한다면서 욕을 하면서 떠났을까요? 아니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여인의 행동에 대해 복음은 이렇게 전해줍니다.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엎드려 절했다는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겸손의 표시입니다. 이러한 겸손으로 주님 앞에 나왔기에 그 뒤에 ‘강아지’에 비유하는 모욕적인 말을 들어도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의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큰 사랑에 비해 우리의 모습이 너무나도 작기 때문입니다. 그 겸손의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더욱 더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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