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작가인 데이 클라렌스 셰퍼드는 자신의 글에서 ‘세 개의 황금 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즉, 누구나 말하기 전에 세 개의 문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지요.
첫째는 그것이 참 말인가? 둘째는 그것이 필요한 말인가? 마지막 세 번째는 그것이 친절한 말인가? 라는 문을 거쳐서 말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과연 내 자신이 내뱉고 있는 말이 이 세 개의 황금 문을 통과한 적당한 말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참으로 많지요.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거짓말을 할 때도 많고, 또한 나를 드러내기 위해서 필요하지도 않은 말을 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아픔과 상처를 주는 말도 얼마나 많이 하고 있습니까?
어느 남편이 아내에게 친구들과 함께 식사 하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만 좀 먹어. 너무 먹어서 네 살이 옆으로 터져 나가겠다.”
이 말에 아내는 크게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참 말도 아니었습니다. 아내는 좀 살을 찌웠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겉으로 보기에 마른 체형이었습니다. 또 필요한 말이었을까요? 친구들과 함께 외식하는 자리는 즐거움의 시간이지 상처 주는 시간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친절한 말도 아닙니다. 남편의 쓸모없는 말이 비수가 되어 아내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말이란 아픔과 상처를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희망을 주기 위해서 사용될 수 있어야 합니다. 말이란 나를 드러내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사랑하기 위해 사용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말은 어떤 말일까요? 지금 내 자신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의 모습이 바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성전세에 대한 문제가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임금이 자기 자녀들에게 세금을 거두지 않는다면서 굳이 성전세를 낼 필요가 없음을 이야기하십니다. 그러나 그들과의 다툼을 피하기 위해 고기를 잡아 성전세를 베드로의 몫까지 내주십니다. 성전세를 걷는 이들을 무서워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툼의 말을 통해 명확하게 진리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일은 다툼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일치를 이루는 것이고,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거룩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것을 얻기 위한 말이 아닌, 오히려 큰 것을 얻기 위해 굳이 내지 않아도 되는 성전세를 내면서 다툼을 피하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 삶 안에서 이 원칙을 늘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작은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하느님의 일에 집중한다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말이나 행동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면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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